11월 24, 2024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지도 마세요..” 임재범 이복 형제 손지창, 호적 정리하고 장례식에서 울부짖은 진짜 이유

90년대 미남 톱스타 손지창 씨는 한 때 장동건, 이병헌, 김민종, 이정재, 류시원 씨 등 당대 최고 청춘 스타들 인기를 발 아래에 두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청춘 스타였습니다.

당시 보기 드물게 트렌디하면서도 세련된 외모의 소유자였으며 손지창 신드롬을 일으키며 배우는 물론 가수로도 크게 성공했죠. 소녀들을 잠 못들게 하던 오빠로서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귀공자 같은 모습이었는데요. 남 몰래 피눈물을 흘린 가슴 아픈 가정사 때문에 장례식장에서도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과연 무슨 일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호적에도 오르지 못 했던 임재범

손지창 씨는 과거 유명 아나운서로 큰 인기를 끌었던 임택근 아나운서의 사생아로 가수 임재범 씨와는 배다른 형제라고 알려졌습니다.

임택근 씨는 바람을 피워 두 번째 아내에게 임재범 씨를 그리고 세 번째 아내에게 손지창 씨를 얻었습니다. 그는 어린 임재범을 처음에는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아 호적에도 올리지 않았고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숨겨서 키웠습니다. 재혼한 뒤 호적에 올려주기는 했는데 경악스럽게도 임택근 아버지 호적이 아니라 자기가 재혼한 부인의 아들로 호적에 올렸습니다. 즉 자기가 낳은 아들로 보이지 않게 한 것이죠.

또한 임택근 씨는 임재범 씨의 유년 시절에 고아원과 외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자라도록 방치하다가 임재범 씨 생모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임재범 씨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자 임재범 씨를 키우게 됩니다.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 했던 손지창

또 다른 아들 손지창 씨는 아예 태어날 때부터 임택근 씨가 모른 척해서 이모 부부의 가정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손지창 씨 혼자 성씨가 다른 이유도 이모부의 성을 따랐기 때문, 후에 중학교 졸업 즈음 손지창 씨가 생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엄마와 살게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때를 회상하며 손지창 씨는 “원래 나는 친아버지 존재를 몰랐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동안 꿈에 그리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 그리고 왕년에 유명하신 분이었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좋았던 마음에 전화 통화를 하고 직접 찾아뵈었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손지창 씨는 아버지를 만나 잠시나마 가졌던 행복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직접 만났는데 아버지는 종이를 들고 계시다가 파르르 떠시더라 반가워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회의가 있다. 빨리 가라 하시면서 2만 원을 주셨다. 그 돈을 들고 오면서 내가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아버지에게 연락도 안 했고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라고 했는데요.

그러다가 대학교 등록금 문제로 다소 어려워져서 대학교 첫 등록금은 아버지가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찾아갔다고 하죠.
그런데 정작 둘이 대면한 자리에서는 임택근 씨가 수백만 원짜리 시계를 찬 상태로 “나도 어렵다”며 이런 제안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에 손지창 씨가 분노해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화를 내자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돈을 주겠다고 급하게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 더러운 꼴에 환멸을 느낀 손지창 씨는 두 번 다시 아버지를 찾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후로 절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고 나서도 임택근 씨는 손지창 씨를 끝까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자신의 여성 편력과 사생활에 대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재빨리 “아들아”라며 감동의 재회를 하는 방송을 찍었습니다. 당시 방송상으로는 손지창 씨도 아버지를 용서하고 부자 관계를 회복해서 서로 왕래하며 지내기로 했다는 식으로 보도되었지만 훗날 손지창 씨는 “그건 임택근과 친분이 두터운 방송사 고위 관계자의 협박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찍은 것이며,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도 없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 라고 강한 어조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이복 형제의 만남

일각에서는 이복 형제인 손지창 씨와 임재범 씨 관계는 별로라는 루머도 있지만 사실 둘의 사이는 애틋하다고 하죠. 임재범 씨는 당시 친하게 지내는 기자의 주선으로 손지창 씨를 만나게 됩니다.

임재범 씨 측근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은 서로 만나자마자 부둥켜 안고 울더라 둘의 그 격렬한 울음에는 두 사람의 공통된 아픔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 같더라 울음이 진정된 다음에는 서로 긴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했다. 결국 당시 손지창이 살고 있는 여의도의 한 작은 아파트로 장소를 옮겨 서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언급했는데요.

그 후 이복 형인 임재범 씨와는 제법 사이가 좋게 지냈으며, 더 블루를 재결성했을 때 임재범 씨가 손지창 씨에게 보컬 트레이너를 맡기도 했고 손지창 씨는 임재범 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례식에서 울부 짖은 이복 형제

손지창 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사생활의 비애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병역 면제로 인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과거의 사생아은 군대에 입대할 수 없는 법이 있어서 손지창 씨는 군대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손지창 씨가 정신 이상을 핑계로 군대를 면제받았다는 인터넷 허위 사실이 유포되었고 그러면서 “정신병 있는 손지창이 어떻게 회사 경영을 하느냐?”라는 식으로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손지창 씨는 남다른 가족사로 인한 아픔만으로도 서러웠는데, 군 복무 관련한 허위 사실이 떠돌아서 더욱더 괴로움과 분노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당시 임택근 전 아나운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두 아들에 대한 심경을 고백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는 “두 아들이 다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 자랑스럽다.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두 아들을 둔 것이나 귀여운 손자 손녀를 세 명이나 얻은 것을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며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안고 살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낀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임택근 씨의 고백에는 자기 잘못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기에 두 아들은 끝내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호적 정리를 해서 아버지와 사실 전혀 관계가 없는 남남이 되었습니다. 2008년 임택근 씨는 버스에서 넘어져 목을 심하게 접지르는 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월 11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죠. 장례식장에는 두 아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분노나 원망까지 모두 지워졌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