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 2024

“아들들아 미안하다..”현미의 안타까운 별세 후 빈소에서 오열한 두 아들, 현미가 사망 전 마지막으로 남긴 메세지

하루 전날까지 괜찮았다던 가수 현미 씨의 의문의 사인이 결국 경찰 수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그녀는 평소 약했던 발목 탓에 넘어지며 싱크대에 부딪힌 것이죠. 안타까운 것은 그녀를 발견해 제때 신고해 주었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미 씨는 혼자 지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너무나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죠. 참 한때 대한민국을 울리고 웃겼던 명가수의 마지막 순간이 이처럼 외롭고 쓸쓸했다니 가슴이 절로 미워져 옵니다.

그런데 사실 몇 해 전부터 현미 씨는 극심한 생활고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니 내는 앨범마다 족족 대히트를 거두며 수많은 재산을 쌓았던 그녀가 생활고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현미 씨가 마지막 몇 회 동안 매니저조차 없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원인과 그녀가 끝끝내 두 아들을 남편의 호적에 올리지 못했던 이유.

그리고 생전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한 남자 고 이봉조 씨와의 관계까지 낱낱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타까운 생활고

지난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상습 고액 체납자 명단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가수 현미 씨 공단에 따르면 그녀가 미납한 금액만 무려 1500만 원에 달했다고 하죠.

많은 분들이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그녀가 설마 돈이 없어 보험료를 안 내겠어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요. 하지만 그 무렵 현미 씨에게는 생활고를 유발할 정도로 거액의 부채가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현미 씨가 7억 원 가까운 빚을 떠안게 된 이유는 지인들로부터 경제적인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었죠.

“돈이 필요하다”라며 부탁해 오는 이들에게 한 치의 의심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가 끝끝내 돌려받지 못하는 등 사기를 수차례 당한 뒤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집에 도둑까지 드는 등 악재의 악재가 겹치며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그녀는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가 아닌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며 행사 스케줄을 소화했죠. 심지어 나중에는 매니저에게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자 스스로 운전면허 취득에까지 도전하며 가수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죠.

가슴아픈 가족이야기

현미 씨가 세상을 떠난 지금 대중들은 다시금 그녀의 지난 삶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현미 씨의 과거 러브 스토리입니다. 지금껏 대중들에게 알려진 현미 씨의 그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죠. 바로 대한민국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자 천재 작곡가였던 故이봉조 씨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서로를 만난 곳은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무대에 위문 공연을 오르던 한 악단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곧 현미 씨는 이봉조 씨의 아이까지 임신한 뒤 그와 결혼식을 올릴 날짜만을 기다리게 되죠. 바로 그 무렵 현미 씨에게 믿기지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당시 임신 8개월 차였던 그녀에게 “내가 이봉조의 부인이다”라며 한 여인이 찾아온 것이죠.

알고 보니 이봉조 씨는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꽁꽁 숨긴 채 현미 씨를 만나온 겁니다. 이 일에 대해 이봉조 씨는 오히려 “이혼하려던 참이었다”라며 부인과의 이혼 서류까지 꺼내놓고 현미 씨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현미 씨는 장장 15년을 두 아들까지 낳고 기르며 오직 이봉조 씨만을 믿고 함께 살았지만 어느 날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이성의 끝을 놓치고 말죠.

전화를 건 이는 스스로를 현미 씨의 오랜 팬이다라고 소개하며 더 이상은 현미 씨가 속는 것을 가만 두고 보지 못하겠다라는 말까지 덧붙였죠. 그리고 이어진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알고 보니 전처와 이혼을 한 줄 알았던 이봉조 씨는 여전히 그녀를 본처로 둔 채 현미 씨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헤어지자”라고 통보를 했는데요. 그러자 이봉조 씨는 되려 자신이 더 화를 내며 집안 살림을 모두 때려 부수고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현미 씨는 이봉조 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간 그와 함께 살며 모아온 수천만 원의 돈을 모두 뒤로 한 채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봉조 씨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이는 단순히 현미 씨만이 아닙니다. 그는 심지어 현미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까지도 없는 셈 쳤다고 하죠. 그들을 자신의 호적에도 올려주지 않은 탓에 아들들은 유명 작곡가인 아버지에 어마어마한 저작권료를 단 한 푼도 물려받지 못했죠.

또한 성장기 내내 아버지 없는 서러움을 겪으며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수모 끝에 현미 씨 역시도 이봉조 씨를 향한 마음을 전부 접지 않았을까 싶지만 부부로 15년간 함께 산 정은 결코 쉽게 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봉조 씨를 떠난 뒤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현미 씨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이 전화를 받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이봉조 씨를 찾아갑니다. 내용은 다름 아닌 “봉조가 많이 아프다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라는 비보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현미 씨는 이봉조 씨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자 기어코 눈물을 쏟기에 이릅니다. 당뇨와 합병증으로 인해 너무나도 늙고 야위어버린 그의 얼굴. 사실 이봉조 씨 또한 현미 씨와 헤어진 이후 그녀를 매우 그리워했는데요.

그는 현미 씨와 헤어진 뒤 본부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이후 쭉 홀아버지로 살며 두 여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죠. 현미 씨는 이봉조 씨를 돌보기 위해 다시 살림을 합칠 결심을 재회가 있고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아 결국 이봉조 씨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현미 씨는 “56세라는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것도 너무 가슴이 아픈데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였다는 게 더더욱 나를 슬프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현미 씨가 우울증을 오래 앓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100프로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사실 이봉조 씨로 인해 당했던 서러움만 생각하면 현미 씨가 그를 조금은 미워하지 않을까 하고 짐작하게 됩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원수가 어디고 적이 어딨냐?”라며 “이봉조 씨는 내게 15년 동안 든든한 남편이었고 내게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안겨준 사람이며 평생 부를 노래를 선물해준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을 어찌 미워하겠는가”라는 정말이지 남다른 배포를 자랑하는 말까지 남기며 그의 잘못을 모두 용서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생에서 이봉조 씨로 인해 너무나 큰 마음고생을 해야 했던 현미 씨. 부디 지금쯤 하늘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지난 회포를 모두 풀고 아픈 인연을 잘 정리하고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