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의 기다림, 마음을 열기까지의 긴 여정
아역 배우 ‘순돌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건주는 이제 무속인의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생후 2살 무렵 부모와 헤어져 할머니와 고모들의 손에서 자라야 했다. 아버지와는 10년 전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잠시 얼굴을 본 뒤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는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다.

이건주는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어머니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끝내 만나지 못했다. 당시 어머니가 제작진에게 “쟤 돈 잘 벌어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상처를 받아 만남을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해였는지도 모른다며, 그때는 너무 어렸고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스스로도 변화된 마음을 느낀 이건주는 이번에는 어머니를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그는 자신을 키워준 고모에게 어머니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고모가 기억하는 건 어릴 적 불렀던 ‘아명’뿐이었다.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주민센터를 찾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류를 받아든 이건주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며 혼란스러움을 내비친 그는, 무속인으로서 예감했던 일이 실제로 맞았다는 듯 복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류에는 예상대로 어머니가 강원도에 거주 중이라는 정보와 함께, 어머니가 재혼하여 이복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막연히 예감은 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충격은 컸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장 든든한 울타리, ‘부모 같은’ 고모의 사랑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이건주는 자신을 키워준 큰 고모와 함께 강남의 한 뷰티숍을 찾았다.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고모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고모는 제게 부모님과 다름없는 존재예요. 지금은 친구 같고, 어릴 땐 세상 전부였죠.” 그는 고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꺼내 놓았다. 고모 역시 “건주는 내 아들이다. 이 아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건주는 “이제는 용돈도 드릴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사드릴 수 있다. 앞으로는 잘해드리며 살고 싶다”며 고모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뷰티숍에서 메이크업을 받은 고모와 함께 사진관을 찾은 두 사람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소중한 시간을 남겼다. 집으로 돌아와 함께 식사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족 그 자체였다. 이건주는 고모와 대화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고모는 “당연히 궁금하지. 너도 궁금하면 가서 풀어야지”라며 이건주의 마음을 응원했다. 실제로 15년 전 이건주가 만남을 거부했던 자리에서 대신 어머니를 만났던 고모는 “그때 어머니가 키도 작고 애교 많고 활달한 사람이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건주는 자신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새 가정에 피해가 될까 우려했다. 이에 고모는 “(어머니가) 그런 걸 숨겼을 분이 아니다. 나는 네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콜이다”라고 말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순간, 44년 만의 눈물
마침내 이건주는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를 찾아 강원도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그는 “겁나고 두렵지만 가보자. 너무 떨린다”고 말하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무작정 집 앞까지 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에는 조심스러움과 망설임이 묻어났다. 도착한 이건주는 어머니의 집 근처를 서성이다 눈물을 닦았다. “여기에 엄마가 살고 계셨구나. 내가 걱정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그는 근처 카페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며 시간의 무게를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섰다. “건주야, 엄마야.” 어머니는 이건주를 보는 순간 두 팔로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 순간, 긴 세월의 공백은 눈물로 녹아내렸다. 엄마와의 재회는 단지 혈연의 회복이 아니라, 이건주 인생의 가장 아픈 빈칸을 채워 넣는 순간이었다. 용기 내어 발걸음을 옮긴 그와, 그런 아들을 기꺼이 받아준 어머니.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이날의 만남은 단지 방송을 위한 장면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상처와 혼란 속에 살아온 이건주가, 마침내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고 정리해 나가는, 진짜 삶의 한 페이지였다. 그리고 그 곁엔 언제나처럼 고모가 있었다. 기다려준 엄마도, 끝까지 품어준 고모도, 모두가 그의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