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는 이후 드라마 한 지붕 새 가족 등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몇 개 맡다가 1994년 베스트 극장의 ‘하얀 여로’에서 첫 주연을 맡은 이후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어 mbc 연기대상 신인상 및 인기상과 이듬해인 1995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을 수상하게 되죠.
이후 아들의 여자에 출연하다가 촬영 도중 입영 할 상황이 되자 연기도 안 하고 바로 군 입대를 하게 되면서 하차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이 일은 상당한 이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어마한 차인표 가족
차인표는 과거 연예계 금수저 집안 1위로 선정될 정도로 집안이 좋기로 유명한데요. 그는 ‘뉴저지 주립대’ 경제학과 출신의 엘리트이고 그의 형은 현재 cj 그룹 부사장으로 영입된 이후 3개월 만에 정기 인사를 통해 cj 올리브 네트웍스의 대표로 선임되었습니다.
또한 차인표의 동생 차인석 역시 ‘RBS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에서 전무로 재직하다가 2013년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죠. 한때 차인표가 재벌 2세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재벌 2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실제로 차인표 집안의 재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차인표의 아버지는 국내 해운업계 최고로 손꼽히는 우성해운 창업주 차수웅 회장이죠. 우성해운은 1974년 창립 이후 수출 3천억 달러를 달성해 국내 해운업계 4위까지 오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차인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어 이후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을 하게 되었죠.
이후 차인표의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자식을 키우기 쉽지 않았던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차인표 역시 어머니와 함께 이민을 가게 되었죠. 그리고 이후 차인표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진해운 미국 지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상속 거절
이어 1993년 차인표는 전 아내를 만나 첫 번째 결혼을 했는데요. 두 사람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곧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차인표는 자신이 점차 돈에 집착하게 되어 가는 걸 깨닫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와서 취직을 하고 싶었지만 한동안 직장도 없이 약 1년 정도를 생활하게 되죠.
당시 그의 나이 26살이었는데요. 주머니에 300원 밖에 없었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다 보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해보았지만 고아가 된 느낌이 들어 미국행은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버지 차수웅이 한국에 있었지만 차인표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죠.
사실 차인표는 유학 시절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등 혼자 힘으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참고로 차인표는 부친 차수웅 회장이 은퇴를 고민했던 2004년 경영권 다툼 없이 삼 형제와 함께 모두 경영권을 거부하였고 당시 회장직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차인표의 아버지인 차수웅 전 회장은 자신의 자녀들 중 차남인 차인표의 리더십이 제일 좋아서 차인표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었죠. 그러나 4남매 모두가 회사 상속을 거절하자 아버지인 차수웅 전 회장도 한 주의 주식도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매각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신애라를 만나다
그러다가 차인표는 mbc 공채로 합격되면서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신애라를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애라는 이국적인 외모로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차인표 역시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차인표 신드롬이 일어났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애라는 차인표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었다고 하죠. 하지만 차인표가 스태프들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모습이나 인기가 높아져도 한결같은 겸손한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음을 연 신애라가 차인표에게 먼저 대시를 했죠. 당시 신애라는 “저에 대한 남편의 관심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성격은 과묵했어요. 결국 제가 적극적으로 대시하기로 결심했죠”라고 밝혔습니다. 두 사람의 열애는 신애라의 기자 친구에 의해 처음 공개가 되었는데요. 다행히도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고 그래서 신애라는 오히려 지금은 그 친구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후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차인표는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당시 차인표는 미국 영주권자였기 때문에 군대를 회피할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당당하게 현역 입대를 했죠. 그렇게 이후 차인표가 이등병의 신분이었던 1995년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슬하에 아들 차정민을 낳게 되고 2005년과 2008년에 신애라가 복지원 봉사를 다니던 중 딸 2명을 입양하게 됩니다.
또한 두 사람은 기부와 봉사 등의 선행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죠. 모쪼록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