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작가 “혼내지 마세요”…
엄마 손을 잡고 전시회에 구경 온 꼬마가 그만 전시 작품을 넘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이 어린이는 전시관에서 실수로 500만 원으로 책정된 조형물을 깼다. 그런데 이 작품을 만든 작가가 ‘미술계 관행을 거스르는’ 대응을 보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해당 일은 노무현 서거 14주기 추모전에서 벌어진 일. 22일 미술계에 따르면, 한 어린이가 노무현 서거 14주기 추모전시회 ‘사람 사는 세상’에 전시된 조각 작품을 지난 20일 깨뜨렸다. 이 작품을 전시한 이는 ‘평화의 소녀상’ 작품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진 김운성 작가다. 이 조각가는 ‘평화의 소녀상’을 조각한 김운성 작가로 22일 류근 시인이 자신의 SNS에 소개, 이 일은 삽시간에 퍼졌다.
전시회 주최 쪽 관계자는 “한 어린이가 1500만 원으로 책정된 3개의 조형물 가운데 하나를 건드려 작품이 책상에서 떨어졌다. 재료가 FRP(합성수지)여서 조형물이 산산이 부서졌다”라고 설명했다. 이 일이 벌어지자 해당 어린이와 어머니는 사색이 된 모습으로 사과를 했다고 한다. 전시회 관계자들도 극도로 긴장한 가운데 미술계 관행에 따라 이 어린이의 부모에게 변상을 요청하는 방안도 생각했다고 한다.
전시회 측은 김운성 작가에게도 작품 훼손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김 작가가 전시회 관계자에게 답변한 문자 메시지엔 뜻밖의 내용이 담겼다. 김 작가는 메시지에서 “아이를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다음처럼 적었다.
“작가가 좀 더 신경 써서 파손 되지 않게 했어야 했는데… 작가의 부주의도 있었던 일이라 생각됩니다. 변상·보상도 생각 안 하셨으면 합니다. 작가에게는 소중한 작품이지만 아이에게 미안함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많은 이상과 꿈을 가지고 생장하는 내용입니다. 씨앗입니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작품 파손에 대해 이해를 시켜주시되 혼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 작가는 한 언론매체와의 통화에서 “그 아이가 일부러 작품을 깼겠느냐. 실수를 한 것일 것”이라면서 “이번 전시회 주제처럼 ‘사람 사는 세상’은 아이가 실수를 인정하면 이해해주고, 아이가 상처를 안 받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깨진 작품 퍼즐을 맞춰 보수를 모두 한 다음에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안심하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현재 15조각으로 깨진 작품을 거의 복원했다고 한다. 이 복원된 작품을 다시 전시회에 내어 놓는 게 어떨지 궁리하고 있다.
“깨진 작품 복구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안심하라고…” 이 전시회를 기획·주관한 유준 작가(한국화)는 “보통 작가라면 파손한 사람에게 변상을 요구할 텐데, 김 작가는 작품이 왜 깨졌는지 꼬치꼬치 하나도 묻지 않은 채 아이의 상태만 걱정했다”면
“이런 김 작가의 모습이 바로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이라고 말했다.
한편, 류 시인은 이 일을 전하면서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예술가의 마음이 그 어느 예술작품보다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진심으로 코끝이 찡했다”며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