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보면서 즐거운 부분이 바로 이 고증이 잘 된 부분인 것 같아요. 계절감을 잘 살린 건 물론,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전개 될 지가 대강 추측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소현세자가 청의 볼모로 끌려가는 때가 병자호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637년 4월 10일인데, 한마디로 딱 꽃이 예쁘게 피는 봄이죠.아직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가슴 아프게 엇갈리는 이별인데,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조선 봄날의 풍경과 섞이면서 그 슬픔과 애틋함이 한층 배가되게 했거든요.
앞서 있었던 병자호란도 그렇죠. 병자호란이 1636년 1월과 2월에 일어나서 그 추운 날씨와 조선의 위태로운 상황, 그리고 피란민들의 처절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한층 증폭되고요.실제로 청나라에서 조선에 빨리 항복을 받아내려고 추운 겨울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설도 있죠.
그렇다면
이제 다음 대회는 3년 후가 될 것 같습니다. 소현세자가 볼모로 1637년에 끌려갔는데, 3년 뒤인 1640년, 인조 18년 봄에 인조의 병문화를 위해 잠시 소현 세자가 귀국을 하거든요. 장윤이 조선에 돌아올 기회를 얻는다고 하니, 그 편에 함께 장윤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그로부터 또 4년 뒤인 1644년, 인조 22년 봄에 다시 한 번 소현세자가 들어오긴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고, 구화에서의 재회는 길채와 장현이 헤어진 딱 3년 뒤로 예상해 봅니다.그동안 길채는 사업을 넉넉하게 이뤘죠. 그리고 그들의 재회 장소는 우심정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심양에 간 장현이 우심정 분점을 내자는 언급이 나왔었죠.
장현은 우심정에 심양 분점에서, 그리고 길채가 예고에서 춤을 추는 곳은 한양 본점 우심정인 것 같거든요. 서로 떨어져서 생사도 모르고 있었지만 결국 우심정이라는 곳에 드나들고 있었던 거죠 두 사람 모두.
그렇게
예고의 장현이 길채를 대견해하는 모습이 나온 것 같습니다. 열사내보다 낭자 하나가 낫다는 말 길채의 그 강한 생명력에 기뻐하는 것 같죠. 근데 어라 길채가 머리를 올리고 있네 이게 실제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우심정을 드나들고 대장간 사업에 거친 일을 하는데 아가씨라고 하면 여러 가지로 귀찮은 일도 있고 엮이게 될 것 같아서 그냥 결혼한 척 머리를 올리고 사는 거 아닐까 싶어요.
사실 지금 길채가 결혼을 서두를 이유도 없습니다. 꿈속에 서방님이 장현이라는 걸 알았는데 그가 죽은 줄 알고 있고 그 상황에 딴 남자 만나고 싶겠어요? 또 관여했다고 시집 가라고 등떨미는 부모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버지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이니까요. 장연히 죽은 줄 알았던 지난 3년간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정신 없는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곱게 자란 양반댁 규수가 대장간이라는 험한 일에 평생 해보지 않은 장사까지 해야 하니 여러 가지로 엄청 힘들었겠죠 그 과정에 곁에는 꽤 든든하게 마음을 써주는 원무가 있었을 것 같고요. 원무가 길채를 짝사랑하고 있고, 길채는 그 마음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생명을 빚었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생활에서도 어려울 때 흑기사가 돼주는 원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가까워지는 정도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죽은 줄 알았던 장현을 만나게 되는 거죠. 유령이야 환상을 본다고 생각했을까요? 장현을 만난 그 감정이 어땠을까요?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장현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장사를 위해 그냥 머리를 올리고 그 상황에서 장녀는 겉모습만 보고 길채가 이미 결혼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10화 1부가 끝나고는 다시 헤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는 2부에서 1644년 인조 22년 봄에 다시 만나는 거죠.
아 인조가 좀 더 자주 아팠어야 되는데 3, 4년에 한 번씩 아파서 너무 애틋하게 왔다 갔다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