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선수 박세리의 아버지는
딸의 커리어와 성공을 위해 세상 에 못 할 짓 하나 없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아래 자란 박세리는 적지 않은 나이인 46세. 드디어 그런 아버지를 고발하며 그동안에 있었던 아버지의 실체를 폭로하기 시작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세리 희망재단 측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세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 단은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를 사문서 위조 및 사문사위조 행사 혐 의로 고소했고, 폭로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장윤정에 이어 박수홍과 부모 형제간의 재산 다툼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또 한 번의 연예계 큰 재산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박세리는
‘리치 언니’, ‘부자 언니’라는 뜻의 별명을 갖 게 되며 젊은 세대들에게는 예능인으로 더 익숙하지만, 중년 이상의 세 대에게는 전설적인 골프 선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98년 미국 LPGA 투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성공 신화로, 전국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98년 IMF로 전 국민이 힘들어했을 때, 박세리는 골프로 이름을 날리며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그녀는 당시 골프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국민 스포츠가 아니었음에도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 1위 대한 민국을 가장 빛낸 사람 1위에 이르며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박세 리의 활약이 국위선양 면에서 월드컵 16강 진출보다 큰 효과라는 찬사 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국민 영웅’으로 상징적인 면에서 앞으로 어떤 선수가 등장해도 넘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전무후무한 국민 스타로 기억되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세계 골프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오픈 경기 당시, 공이 물에 빠지 자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려 우승했던 순간은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박세리가 처음부터 골프에 몸을 담은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 가 장 먼저 시작한 운동은 육상이었습니다. 육상으로 스포츠계에 입문했다가 8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녀는 골프광 아버지 박준철에 의해 골프계 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의해 골프를 시작했던 만큼 박세 리의 골프 인생하면 아버지 박준철을 떼어낼 수 없습니다. 박세리 아버 지의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여 자식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냈다는 전망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은 매우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바로 조직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박준철은 거친 바닥에서도 꽤 잘나가는 건달이었습니다. 박세리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조직 생활 을 청산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는 미국의 가족들을 둔 후, 귀국해서 조 직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칼침을 맞아 1년간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역경을 딛고서 박세리를 키워냈습니다.
박준철은 딸의 담력과 배짱을 키우기 위해 독특한 훈련 방식을 택했는 데, 이따금 투견을 보여주며 싸움의 세계를 알려줬고,
한국이 아닌 세계를 보라고 다그쳤습니다. 거기다 깊은 산속 공동묘지에서 스윙 연습까 지 시켰다고 합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는 빚을 내면서까지 박 세리의 골프 생활을 지지해 줬습니다. 그리고 쉬는 날 없이 박세리를 엄 격하게 훈련하며 항상 함께 했습니다.
최근 방송인 박세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박세리 희망 재단이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 씨를 사문서 위조 및 사문서 위조 행사 혐의로 고발했고, 재단 이 박 씨를 고소한 이유는 새만금지역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추진하던 한 업체가 박 감독의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으며 이에 부친 박씨가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골프 학교를 짓는 데 딸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박세리는 아버지에게 돈도 다 주고 했는데 근데 갑자기 왜 딸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한 것일까요? 한 방송에서 그 녀가 말했던 말이 떠오르는데, “나도 내가 번 돈을 부모님께 다 드렸다. 내가 왜 열심히 사는 줄 알아? 이제 벌어야 돼서” 도대체 그동안 벌어들 인 수백억은 어디에 갔길래 월세나 배당만 받아도 가만히 놀고먹고 살 수 있는 돈일 텐데요.
실제로 방송에 나온 인테리어 한 대전 대저택 역시 부모님 명의로 되어 있고, 본인의 재산이 없는 그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