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 2024

최근 밝혀진 전국노래자랑 김신영의 실체, 20억까지 포기하게 된 진짜 이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혹시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가요? 한 여배우가 청룡 영화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살다 보면 가장 어렵고 무서운 게 편견 그리고 선입견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견을 먼저 깨주시고 선입견에 방패처럼 제 앞에 서주신 박찬욱 감독님을 대신해서 소감을 전하겠습니다”라고 하며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시상을 대리로 수상했는데 이 사람이 누구냐면 다름 아닌 개그우먼 김신영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최근 한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까지 받으며 ‘연기 천재’라는 소리까지 듣자 이와 관련해 박찬욱 감독이 말하길 “확신을 갖고 캐스팅했는데 정말 타고났더라 평생 연기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고 뉘앙스를 아주 잘 살리며 그녀가 나오는 연기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김신영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입견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혹은 놓친 줄도 모르며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그녀도 과거 사람들의 선입견으로 인해 모든 프로그램이 그녀를 다시는 부르지 않고 친한 동료들조차 비난을 하며 조롱 아닌 조롱을 하자 결국 집 밖을 나오지 못해 5년간 칩거 생활을 해야만 했던 김신영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김신영의 순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김신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집안이 가난해도 너무 가난해 당시 이사만 60번을 가고 초등학교 2학년 1학기에만 8번 전학을 갈 정도였습니다.

출처 : kbs

이 시기 그녀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고 당시 어린 김신영은 한 번은 목포에 사는 외할머니와 살다가 또 한 번은 경북 청도에 사는 친할머니와도 함께 살며 이때 두 할머니로부터 훗날 그녀의 개인기가 되는 할머니 말투와 사투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녀가 꿋꿋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부족하더라도 할머니의 사랑과 특히 이웃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당시 어린 김신영이 힘들게 지낸다는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종종 그녀에게 “밥 먹었니?”, “이것 좀 먹어봐”라며 빵이며 찌개며 여러 음식들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때 꼬치집 이모가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신영아 가만히 있어봐. 가만히 있어봐.너 자존심 상해하면 안 된다 닭 꼬치야 어서 먹어라”고 하며 꼬치를 주었고 또 가연동 슈퍼 이모는 “신영아 이리 와봐. 너 우유 먹고 키 좀 커라”며 새 우유를 돈도 받지 않고 주고 과자도 주고 심지어 쌀까지 주면서 “야 너 나중에 다 갚아야 돼?” 라고 장난식으로 말하며 어린 김신영이 부담 갖지 않게 편하게 도와주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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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가연동 슈퍼 이모는 훗날 그녀가 개그맨이 되고 나서 찾아갔더니 보자마자 펑펑 웃으면서 “내가 너 상 받는 거 봤다.
tv에 나올 때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며 그녀를 반겼고 그리고 이때 김신영이 슈퍼에 있는 물건들을 박스채로 구입해 스태프들에게 나눠주면서 “갚은 거 아니에요. 아직 덜 갚았어요. 오래 사셔야 제가 다 갚을 수 있어요”라고 하며 이후에도 몇 번이나 더 갔었다고 했습니다.

김신영이 개그맨이 되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

김신영은 한참 성장기에 감수성이 예민할 때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친구들 앞에서 가난으로 인한 부끄러움이었는데 당시 학교에서 교내 방송으로 ‘김신영 교무실로 와’ 그럼 친구들이 “야 신형이 또 6승 애비 못 냈나 봐” 라고 하며 친구들도 다 할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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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비참한 건 당시 육성 회비를 못 낸 아이들이 여러 명 불려오는데 그런데 전부 자기 동생들로 그렇게 육성 회비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다 교무실로 불려 망신을 당하자 그때 김신영이 속으로 ‘학교를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냐’며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린 김신영이 유일하게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친구들을 웃길 때로 당시 그녀가 개그를 하면 친구들이 “와 신영이 너무 웃겨” 하면서 자신에게 모이는 게 너무 행복하고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무렵부터는 친구들을 웃기는 게 마냥 좋고 그러다 다른 반 친구들에게까지 소문이 나면 더욱 뿌듯해서 ‘내일은 뭘 또 해볼까? 선생님 흉내를 내볼까?’라고 생각하며 사실상 학창 시절에는 오로지 웃길 궁리만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앞으로 본인이 가야 하는 길이 코미디언이라는 확신이 생겨 학창 시절 내내 오락 부장을 독차지했고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학교 축제에 참석한 코미디언 박경림을 보기 위해 무대까지 뛰쳐나가자 당시 박경림으로부터 “너는 나중에 꼭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힘든 와중에도 개그맨 꿈을 포기 하지 않았던 김신영

이처럼 그녀는 다른 아이들의 장래 희망으로 선생님 간호사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당당히 개그맨을 외쳤지만 딱 두 사람이 그이 개그맨 꿈을 반대를 했는데 그건 바로 부모님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부모님은 ‘가뜩이나 집안도 어려운데 너라도 안정된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코미디언의 길을 완강히 반대하고 당시 반 강제로 간호학원에 보내기도 했는데 하지만 그녀가 단 하루 만에 뛰쳐나오자 이후 모든 걸 포기하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려면 네가 벌어서 알아서 하라’며 허락 아닌 허락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하루는 집에서 tv를 보다가 개그맨 조세호가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는 걸 보는데 밑에 자막으로 예원외대 코미디 연기학과 모집이라고 뜨는 걸 보고 세상에 코미디 학과도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저기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부모님은 어떠한 지원도 해주지 않았고 그래도 이때 마침 2002년 월드컵이 열리면서 그녀가 길거리로 나가 생수와 야광봉을 팔고 나중에는 공사장에서 벽돌까지 날아가며 스스로 힘겹게 800만 원을 모아 마침내 한국대학교에 최초로 생긴 애원대학교 코미디 연기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때 학과의 교수가 코미디언 이영자였고 당시 이영자는 자신과 비슷한 체형에 비만인 학생들을 불러 식사를 자주 사주기도 했는데 그래서 훗날 이영자가 예능에 함께 출연한 김신영에게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며 그녀를 챙겨주는 모습들을 방송에서 자주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행님아’로 대박이 나게 되는 김신영과 슬럼프

김신영은 친구와 함께 sbs에 개그맨 시험에 도전했다가 몇 십 초 만에 탈락하려는 순간 당시 심사위원이 “혹시 마지막으로 개인기 같은 거 있냐?”고 묻자 위기에 처하면 초능력도 생긴다는 게 맞는 말인지 훗날 그녀가 여러 방송에서 선보였던 눈물 연기 네 가지 버전을 보여주었는데 그게 먹히면서 합격하게 됩니다.

그렇게 21살의 나이로 sbs 7기 공채 개그맨이 된 그녀는 이후 ‘행님아’라는 코너를 통해 강호동도 웃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일반 예능 버라이어티에서는 적응을 잘 못해 한때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당시 ‘행님아’로 빵 뜨고 수많은 예능에 불러 나갔는데 그런데 모든 프로그램들이 두 번 다시 나를 부르지 않더라. 왜냐하면 짜여진 코미디와 달리 일반 예능은 자꾸 들이대라고 하는데도 어느 타이밍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고 또 처음 보는 사람인데 혹시나 내가 이런 말을 받아쳤다가 상대가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소심증이 도져서 진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

그리고 이때 감독님들도 ‘신영아 여기서 웃겨야지 뭐 하니 네 캐릭터가 아깝다’고 하자 더욱 기가 꺾여서 공황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정선희 선배의 프로에 나갔다가 선배가 워낙에 잘 받아주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그때부터 조금씩 긴장이 풀리면서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라고 했습니다.

심각한 건강 이상, 다이어트 30kg감량

아무튼 이후 본인의 뚱보 캐릭터를 앞세워 예능에서도 완벽히 적응을 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있었는데 하루는 자신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병원을 찾아가 검진을 받았더니 초고도 비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의사가 그녀에게 신영 씨는 10년 뒤에 뭐라고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물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걸 얘기했더니 의사가 그걸 다 듣고 하는 말이 “지금 몸 상태면 10년 뒤에 신영 씨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어요”라고 하자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뚱보 캐릭터를 과감히 버리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의사의 충격적인 진단으로 인해 어떻게 보면 자신이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도 뚱보 캐릭터 때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년간 체계적인 다이어트를 통해 결국 30kg 이상의 감량을 성공했는데요. 하지만 그 과정 중 그녀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여러 가지 문제들로 또 다른 마음 고생을 심하게 겪게 됩니다.

그렇게 뚱보 캐릭터로 한참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살을 뺀다고 하자 당시 응원의 목소리보다 ‘김신영은 새 개그 짤 생각은 안 하고 지 외모 예뻐지는 데만 신경 쓴다. 살은 아무나 빼나 김신영은 절대 살 못 뺀다’며 악플들이 심하게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출처 : kbs

그리고 훗날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살을 빼겠다고 선언하자 이때 일부 연예인 동료들도 ‘신영아 너 재미없어지고 싶어? 너 캐릭터 어쩌려고? 네가 살 빼면 사람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며 조롱 아닌 조롱을 했고, 심지어 당시의 소속사 회사조차 그녀의 다이어트를 반대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본인도 ‘내가 이렇게 날씬해지면 이제 안 웃겨져서 인기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 어쩌지? 내가 날씬해져도 과연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며 코미디언으로서 본인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김신영이 20억의 제의를 과감히 포기했던 이유

김신영은 이처럼 다이어트가 순조롭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그녀가 보란 듯이 다이어트를 크게 성공하자 사람들이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과 동시에 한때 다이어트 광고 회사로부터 광고 제의도 엄청 받기도 했는데 그 금액을 다 합치면 무려 20억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출처 : kbs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살을 빼고 10년 동안 유지를 했고 그 10년 동안 참 많은 유혹들이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비포 에프터를 확실히 보여주는 업체들과 다른 광고 업체들의 광고료까지 다 합치면 20억 정도 제의가 들어왔는데 모두 다 거절했다. 왜냐하면 업체들이 마치 자신들과 함께 뺀 것처럼 광고를 하자는데 나는 그렇게 안 뺐고 그걸 안 먹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5년의 칩거 생활, 그리고 극복

이렇게 김신영은 건강하고 싶어서 살을 뺐고 그런데 갑자기 달라진 모습에 생각지도 못한 조롱과 악플이 쏟아져 결국 이때 극심한 공황 장애를 겪으면서 이후 방송 활동을 완전히 접고 무려 5년간이나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출처 : mbc ‘전참시’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공황장애가 매우 심해서 5년 정도 칩거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어두워지더라. 그리고 이때는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면 내가 너무 아파서 거절했었는데 그런 면전에다가 ‘요즘 tv에도 잘 안 나오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네’라고 하며 나를 욕하더라.

그렇게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나는 계속해서 어두워지기만 하다가 하루는 문득 생각이 든 게 ‘이렇게 살다간 큰일 나겠다. 한 번 있는 인생인데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유쾌하게 지내보자는 생각으로 당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먼저 전화도 걸어보고 그리고 전화할 때도 괜히 민망하니까 ‘키즈 쇼입니다’라고 하며 장난을 쳤는데 그러다 보니까 신기하게도 진짜 사람이 유쾌해지더라 그래서 이후부터는 일부러라도 밝았던 시절처럼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특히 이때 우리 매니저와 장난을 많이 쳤는데 매니저가 누구보다 나의 상태를 잘 알고 내가 치는 장난을 너무 잘 받아줬다.

출처 : mbc ‘전참시’

그러다 보니 나도 서서히 밝아지면서 방송도 하나 둘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한없이 깊은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 유쾌한 장난이야말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신영 그녀가 고백하길 “사실 내가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다. 낯도 많이 가리고 성격도 내성적이고 그리고 사람들의 기대치에 못 미칠 때는 나도 많이 힘들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준 나를 위해 박수 치고 싶다. 요즘에 속된 말로 존버가 있다. 존중하며 버티자 존중하며 버티는 게 답이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들의 인생도 잘 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