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고 촘촘한 서사와 디테일로 사랑받고 있는 <더 글로리>. 시청자들 사이에선 시즌 2가 3월에 공개되는 점이 유일한 오점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데요.
특히 김은숙 작가가 숨겨놓은 디테일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데, 최근 네티즌들이 찾은 <더 글로리> 속 특별한 세계관이 화제입니다. 과연 세계관이 무엇 때문에 화제인 것인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 제목부터 찬란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듯한 <미스터 션샤인>과 <더 글로리> 두 작품 모두 김은숙 작가가 집필했는데요.
특히 <미스터 션샤인>에는 글로리 호텔이 등장, “귀한 걸음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어머 영광? 글로리에 걸맞은 인사였죠?” 라는 대사가 나와 시청자들 사이에선 김 작가가 글로리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반응이 있었죠. 실제로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들은 영광을 찾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역시 마다 않습니다.
동은 역시 “영광은 없을지라도” 라며 모든 걸 내려놓은 채 복수에 자신을 던질 것을 예고했지만, 시청자들은 결국 동은이 복수에 성공해 영광을 되찾을 것 같다는 반응입니다. 또 한 시청자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대사에서 미스터 션샤인과 <더 글로리> 속 특별한 세계관을 찾았는데요.
먼저 <더 글로리>를 볼까요. 동은의 정체를 알게 된 도영이 자신을 몰래 찍은 사진을 내밀자 동은은 “하 대표님이 잘 나온 걸로 보냈어요”라고 담담히 응수. 이에 도형은 “아닌 것 같은데”라며 씁쓸한 듯 웃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같은 대사가 등장하는데요. 애신은 자신의 앞을 막는 동매를 보고 “없애버리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죠. 이에 동매가 “그건 제가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라고 답하자 애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는데요.
시청자들은 <미스터 션샤인>과 <더 글로리>에서 대사는 같지만 두 캐릭터가 내뿜는 텐션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만큼이나 비슷한 대사로 함께 언급되고 있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도깨비>입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호 등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딸 예솔을 보고 재준은 “삼촌 결심했다. 맘 먹었어 방금. 오늘부터 예솔이 지키기로.” 라는 대사를 던지는데요. 이 장면을 이후로 재준은 예솔에게 집착에 가까울 만큼 관심을 보이며 딸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대사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반응이 쏟아졌는데요. 바로 <도깨비> 은탁이 도깨비인 김신에게 던지는 당돌한 고백씬에서 나온 대사였죠. “저 결심했어요. 맘 먹었어요 제가. 저 시집 갈게요 아저씨한테.”라는 대사로 사랑스러운 명장면을 만들었는데요. 서로 사랑하기로 한 대상은 달랐지만, 대사 구조나 순서가 같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것 같다는 반응이죠.
<더 글로리> 재준만큼이나 은탁과 비슷한 대사를 던진 이는 바로 연진입니다. 연진은 “신?뭔 신?ㅂ신?”이라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김신이 수호신이라는 걸 믿지 않았던 은탁은 “그나저나 아저씨 진짜 수호신 맞아요? 뭐, 망신, 근신, 내신, 당신?”이라며 말장난을 하는데요. 김 작가 특유의 위트 있는 말장난. 하지만 <도깨비>에서는 좀 더 밝은 분위기였던데 반해, <더 글로리> 캐릭터들은 제대로 흑화한 것 같아 김은숙 작가의 복수극이라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반응이 많았죠.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은탁과 한 시간이 너무나도 눈부셔 모든 날이 좋았다던 김신. 반대로 동은은 복수 상대인 연진에게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라며 앞으로 닥칠 암울한 미래를 예고합니다.
김은숙 작가는 각 캐릭터들이 가진 마음 가짐과 상대를 향한 마음을 두고 ‘모든 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각자 상처를 지니고 있는 <더 글로리> 동은과 <도깨비> 김신의 복장이나 분위기 역시 비슷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꽃다발
앞서 소개한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그리고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의 새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소품이 있는데요. 바로 꽃입니다. 극중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꽃다발은 절대 그냥 등장하지 않는데요.
<미스터 션샤인>에서 애신을 짝사랑했던 희성이 선물했던 꽃다발은 바로 델피니움. 하얀 델피니움의 꽃의 꽃말은 ‘왜 당신은 날 미워하나요?’라는 의미입니다. 이 꽃말처럼 극중 애신과 희성은 이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애신은 희성에게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도깨비>에서 김신이 은탁에게 선물한 메밀꽃 꽃다발. 메밀꽃의 꽃말은 바로 ‘연인’인데요. 이 꽃다발을 선물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조력자의 관계였지만 앞으로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을 암시했죠.
<더 글로리>에서도 두 가지 꽃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나팔꽃과 백합입니다. 하늘에 맞선다는 악마의 나팔꽃은 신을 믿지 않고 모두에게 복수를 결심한 동은 그 자체를 의미했는데요. 이와 함께 동은이 백합 꽃다발을 선물했던 인물이 있죠. 바로 과거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던 담임 김종문입니다. 물론 김종문은 천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백합은 향이 진해 방 안에 가득 채워넣으면 안되는 꽃이라고 하는데요. ‘순결’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백합의 꽃말 중엔 ‘죽음’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선 백합을 장례식 때 사용해 병문안 때 선물하면 안 되는 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김 작가는 매번 작품에서 꽃말을 사용해 캐릭터 간의 서사를 구축하거나 앞으로의 미래를 암시하기도 하죠. 이 외에도 <미스터 션샤인>에서 친해질 수 없었던 세 남자가 오약꽃 나무 아래에서 함께하는 장면이 <더 글로리> 동은과 현남의 첫 만남 장면 속 흐드러지는 벚꽃이 떠오른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극중 사라는 유학 시절 “파리에서 파리의 연인 봤니? 다운 받는데 사흘씩 걸리는데 그걸 봤다.”는 대사로 김은숙의 또 다른 작품을 언급했는데요. 이에 네티즌들은 역대급 최악의 엔딩을 맺었던 파리의 연인과 같은 실수가 <더 글로리>에서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는 웃픈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글로리>에 숨겨져 있던 특별한 세계관은 결국 작가 김은숙이 설치한 유쾌한 장치 중 하나였던 것인데요. 어쩌면 시즌 1과 시즌 2를 시간차를 두고 공개한 이유는 이렇게 시청자들이 작품을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