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 2024

“제발 그만 우세요..”전성기 맞이한 안성훈 최근 밝혀진 놀라운 과거, 결국 오열한 어머니 알고보니..?

트롯 가수 안성훈 씨를 보면 새삼 긴 병에도 효자는 효자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닥도 하는데요. 안성훈씨는 주변에도 부모님께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심지어 얼마 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일명 ‘엄마 전문가’다운 모습을 뽐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대체 어머니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기에 엄마 전문가라는 별명까지 붙은 걸까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지는 안성훈 씨와 그의 가족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탑10 안성훈의 인기

안성훈 씨는 현재 <미스터 트롯2>를 통해 무명의 시절을 깨고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죠. 방송 초반부터 “<미스터 트롯1>에도 나온 사람 아니냐”라며 소소한 반응이 터져 나오더니 현재는 그의 실력이 대중들을 홀리게 만들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는 대국민 응원 투표에서 1위까지 올랐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게 안성훈 씨가 대중과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타고난 목소리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흠잡을 곳 없는 노래 실력은 이미 가요계와 선배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라고 알려져있는데요.

이미 <미스터 트롯2>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박서진 씨와 진해성 씨 마저 이기고 최종 탑10까지 올랐으니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안성훈 씨는 본인의 목소리를 마음껏 사람들에게 뽐내고 있는 것이지 그의 가수 생활 전반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했던 것은 아니었죠.

화려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가난했기에 한때는 이 소중한 꿈마저 접고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죠. 이렇게 트로트를 사랑했던 안성훈 씨는 왜 가수의 꿈을 접을 생각까지 했었는지, 그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요?

노래를 업으로 삶고 싶었던 꿈

안성훈 씨가 처음으로 ‘가수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은 2011년 쯤 이었다고 하죠. 당시 22세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그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 조금이라도 경제적 보탬이 되고자 전국 노래 자랑에 출전하겠다는 결심을 내렸죠.

그의 목표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로지 입상해상 상금을 받아 부모님 가게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는데요. 그 시절 이미 안성훈 씨는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전단지 아르바이트며 급식 도우미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대 한 번에 큰 돈을 받을 수 있는 전국 노래 자랑은 그에게 매우 솔깃한 기회였겠죠.

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선 무대 그렇지만요 이때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서 본 대형 무대에서의 떨림 자신의 목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무대를 즐기는 관객들, 음악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것이죠. 이때부터 안성훈 씨는 “노래를 업으로 삼고 싶다”라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됩니다.

2012년에는 kbs1 아침마당에 가족이 부른다 코너에서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3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까지 세우며 한 소속사와 계약까지 하게 되었죠. 심지어 이 회사에는 현재 명실상부 트롯 여제인 송가연 씨도 연습생 중 한 명으로 소속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오히려 처음부터 가수로서 잘 풀린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깨달은 지 고작 3년 만에 앨범까지 발매하며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가 않았던 것이었죠.

실패의 쓴잔, 하지만…

안성훈 씨의 삶에서 기대에 부풀었던 2012년 한 해는 오히려 너무나 다사다난한 시기였다고 하죠. 8월 30일 그는 야심찬 마음으로 첫 앨범 ‘오래 오래’를 발매했는데요.

일찍이 곡도 발표 했고, 당시의 안성훈 씨는 신인 가수의 패기를 무기이자 방패 삼아 자신을 불러주는 무대라면 어디든 찾아가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몇몇 행사장에서는 제대로 된 페이조차 쳐주지 않았고 심지어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도 않은 무명 시기였던 터라 어딜 가나 늘 찬밥 신세 무시를 당하기도 부지기수였죠.

설상가상으로 대학 생활까지 병행해야 했던 상황 부족한 생활비와 학자금을 메우고자 라이브 카페까지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음에도 경제적 궁핍함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수년째 당뇨로 투병 중인 어머니에 이어 평생 용접공으로 근무하셨던 아버지마저 관절 질환이 악화되며 일을 간두어야 할 상황이 닥치게 되죠.

결국 안성훈 씨는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외동 아들로서 부모님도 못 모신다면 지금 내 꿈이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이냐”라는 굳은 의지를 품게 된 안성훈 씨. 어쩔 수 없이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고 어머니와 함께 작은 주먹밥집을 차려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안성훈 씨는 어머니와 함께 주먹밥집 차린 뒤에도 언제나 무대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정작 노래를 포기해야만 했던 안성훈 씨 본인보다도 더 당시의 현실에 가슴 아파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안성훈 씨의 어머니였죠.

장기간 당뇨를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몸보다 아들의 꿈을 더 챙기고 응원해주셨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안성훈 씨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결코 가수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 잠시 몸을 담고 있었던 소속사에서 함께 연습을 해왔던 동료인 송가인 씨가 미스트롯을 계기로 범국민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마주한 안성훈 씨. 그러나 그는 그저 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현실은 갑작스러운 전염병 사태로 인해 쫄딱 망해버린 주먹밥집뿐이었습니다. 참 한 때 함께 꿈을 키웠던 이는 이미 저 멀리 앞서 나가 있는데 나 홀로 아직 제자리인 기분이라 그때 안성훈 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차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안성훈 씨의 부모님은 결단은 하게 되는데요. 아들이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노력한 끝에 안성훈 씨는 ‘kbs 트로트가 좋아’에 얼굴을 비추게 되었고 이후’ 미스터트로 시즌 1’에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처럼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결코 포기하는 법을 몰랐던 안성훈 씨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트로 경영 프로그램인 <미스터 트롯2>에서 독보적인 가창력을 뽐내며 당당히 탑10 자리에까지 올라수 있게 된 것이었죠.

트롯 삼남매!

앞서 설명드렸듯 안성훈 씨는 과거 송가인 씨와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꿈을 키웠던 바 있습니다. 이때 당시 그들의 옆에는 쟁쟁한 인물이 한 명 더 있었죠. 바로 오페라부터 트로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고품격 보이스 김호중 씨였습니다.

게다가 세 사람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라고 알려져 있죠. 한때 고생을 함께 했었던 연습생 동료가 송가인의 김호중이었다니 안성훈 씨는 과연 절친한 친구들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심성이 워낙 고은 그이기에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과 서러움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이 듭니다.

하지만 과거의 안성훈은 이제 없습니다. 앞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일만 남은 <미스터 트롯2>의 자랑스러운 탑10 가수 안성훈이 남아 있을 뿐이죠. 게다가 그의 뒤를 지키며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자나깨나 아들을 걱정하고 계실 그의 부모님은 물론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인 김호중 씨, 그리고 송가인 씨 그리고 인간 안성훈이자 가수 안성훈을 응원하는 든든한 팬덤까지.

이처럼 많은 이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는 지금입니다. 7전 8기의 도전 끝에 피어난 대기만성형 가수 안성훈 씨의 성장을 계속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