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 2024

“내 인생이 전부 무너졌다..”김건모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황, 안타까운 어머니 소식에 모두가 숙연해진 이유가..

김건모의 엄마는 김건모와 함께 ‘미우새’에 동반 출연하며 푸근한 외모와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김건모의 억울한 누명 사건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프로그램을 떠나 아쉬움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건모의 재수 조 모 씨에 따르면 “평소에도 몸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의 건강이 김건모의 사건으로 더 악화됐다. 모든 게 조심스러운 상황이다”라고 전하며 최근 이 여사님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얼굴없는 가수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던 김건모는 김창환을 만나 1992년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발매했고 그리고 음악 팬들은 그간 가요계에서 듣지 못했던 김건모의 신선한 목소리와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당시 얼굴 없는 가수로 tv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음반으로 먼저 대박을 치게 되었죠.

당시 김건모가 데뷔했던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신성우 윤상 서태지 등 가수는 음악성뿐만 아니라 외모 역시 준수해야지만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시기로 김건모의 외모는 상대적으로 낯설었기에 데뷔하자마자 방송계 퇴출 위기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날부로 김건모의 소속사는 김건모에게 섭외 요청이 오는 프로그램을 무조건 전부 다 출연시켰는데요. 이후 김건모는 대한민국 최단 기간 최다 음반 판매량으로 기네스 기록까지 세우고 상이라는 상도 다 휩쓸고 다니며 그야말로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하는 국민 가수가 되게 됩니다.

억울하게 모든걸 잃어..

이후에는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여러 예능 프로에도 출연하며 특히 노총각 콘셉트으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러다 나이 50이 넘어 마침내 영혼의 단짝을 만나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 소식을 한 예능 프로에서 공개하자 많은 시청자들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한 연예 기자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당하면서 김건모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죠. 그렇게 김건모는 대중의 사랑을 받던 스타에서 하루아침에 범죄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최악의 누명을 뒤집어 쓴 채 그동안 가수로서 쌓아온 커리어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했지만 결국..

한편 이 무렵 김건모와 장지연은 이미 법적 부부가 된 상태였고 원래대로라면 2020년 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안타까운 누명으로 인해 오히려 두 사람의 파국이 시작되게 됩니다.

당시 김건모의 누명으로 별거가 시작되면서 장지연은 친정에서 기거했고 그 기간이 길어지자 김건모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지연이 이혼을 반대하면서 우선은 별거 생활을 유지하며 1년 넘게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김건모가 더 이상 결혼을 유지할 수 없다며 또다시 이혼 의사를 내비치자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1년 넘게 이혼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는 김건모에 대한 장지연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장지연은 어렵게 이룬 결혼인 만큼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고 하죠.

그러다 3개월 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마침내 2022년 11월 무혐의를 받고 모든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으나 이미 김건모의 인생은 사랑도 꿈도 명예도 모두 날아간 안타까운 상황이었죠.

왜 그랬을까?

이 무렵 유튜버 변희재는 김건모 사건에 대해 충격적인 주장을 하게 되는데 김건모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이유가 김건모가 당시 빌딩 2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채를 뺏기 위해 억울한 범죄와 엮였다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김건모는 결국 억울한 누명은 벗었지만 그는 너무나 많은 걸 잃고 말았고 특히 그의 어머니 이선미 씨 역시 이번 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자 출신 한 유튜버가 김건모의 현재 근황을 전하기도 했는데 “현재 그는 컴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고 있고 그저 자전거를 타면서 마음을 추스리는 것 같다.사실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가족분들도 잘 모를 것이다. 두문분출하면서 바람 쐬러 나오면서 사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말

마지막으로 김건모가 과거 한 인터뷰에서 고백하길 “10집 작업 때 영화 ‘레이’를 보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후 레이 찰스는 25년간 미국 전역을 다니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수가 되었다’라는 자막이 내 가슴을 울리더라 레이 찰스가 60세부터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했다는데 나는 아직 40대이니 일찍 정신을 차려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오랜 기간 국민 가수로 불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미혼이라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지금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할 생각이다. 이상형은 예쁘고 똑똑한 여자다 곧 나타날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