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세분..
195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임지호는 어린 시절 주어왔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자라야 했습니다. 임지호의 아버지는 한의사였는데 이미 4명의 딸이 있었지만 독자가 대를 이어야 해서 임지호의 생모를 데려와서 아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집이 가난해서 먹고살 것이 없어서 임신한 어머니를 다시 내보냈다고 합니다. 임지호는 그렇게 다른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한의사이기는 했지만 가난했던 이유는 정식으로 한의원을 찾아서 돈을 받고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골 한의사로서 사람들이 오면 치료해 주고 그 대가로 달걀이며 닭 등 주는 대로 받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의사인 아버지가 죽어가던 사람을 살린 적이 있었는데 그 은혜를 갚는다고 그 집안의 한 사람이 떡, 옷 등 물질적인 공세를 퍼붓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지호는 3살 때 친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아버지와 양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양어머니는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정성으로 임지호를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3살 때 헤어진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데 어릴 때 몇 분이 와서 잘 큰다라고 말하고 간 것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분이 친어머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임지호는 평생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훗날 친어머니는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라고 하는데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고 친어머니 산소까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어렴풋이 느꼈던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양어머니는 임지호가 22살 때쯤 돌아가셨는데 너무 죄송해서 엄청나게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친아들 못지않게 어린 임지호를 잘 키워주셨는데 자기를 혼이라도 내면 친엄마가 아니라 그렇다라며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오해를 받으며 억울하고 힘들게 살았을 양어머니를 생각하니 너무 죄송해서 애끓는 심정이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양어머니도 소중한 어머니였습니다.
임지호가 자연의 재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2009년경 지리산 자락에서 우연히 밭에서 냉이를 캐던 김승규 할머니를 만났는데 “밥 먹었냐?”라고 물어봐서 “안 먹었어요”라고 하니까 바로 자기 집으로 데려가 그 냉이를 가지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밥을 해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들어가고 냉이와 된장 정도만 들어간 냉이 된장찌개였는데 그것을 먹고 오랫동안 사무쳤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고 그 할머니를 길에서 만난 어머니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찾아뵙고 요리도 해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 기회에 돌아가신 새어머니를 위한 108가지 음식을 찾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밥정입니다.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는 전국을 떠돌면서 차를 잘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방랑했고 닥치는 대로 식당에 들어가 10대 때부터 요리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한 거지의 말씀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리 밑에 거지가 있었는데 거지를 바라보다가 한번 물어봤습니다.
내가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 뭘 해야 하나?라고 물어보니 기술을 한 가지 배워놔야 한다. 기술을 하나 배우면 그 기술은 널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술을 배울까 고민하다가 당시 자신의 형편에서 접근하기 쉬웠던 식당에 가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의식주 해결도 쉽고 양식, 중식, 한식, 일식, 경양식, 라면, 분식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 했다고 합니다. 비록 거지이지만 인생의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살이 되면서 음식에 평생을 걸기로 다짐하고 자나 깨나 음식 생각만 했다고 합니다.
임지호..”나의 스승님은..”
그는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아시는지요? 그렇다면 그는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물론 처음에는 식당에서 주방장에게 배웠겠지만, 그는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방랑길에서 만난 할머니 어머니들에게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그곳의 어머니들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신의 스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면 그는 이승에서는 그리운 생모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어머니로 삼고 그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며 음식을 배우는 스승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임지호는 음식으로 철학적인 경지에 오르기도 했고 또한 철학적인 어휘를 많이 구사했습니다. 놀라운 비결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
고인은 향년 65세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빈소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는데요. ‘더 먹고 가’에서 함께한 개그맨 강호동, 황제성을 비롯해 ‘식사하셨어요?’에 출연했던 배우 김수로 등이 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밖에도 김혜수 송윤아 한지민 추자현 한효주 문정희 이태란 송선미 장현성 신현준 박정수 션 이금희 이영자 인순이 조권(2AM) 진운(2AM) 장우영(2PM) 최시원(슈퍼주니어) 폴킴 공승연 양치승 하지영 황교익 등이 빈소를 찾았습니다.그림도, 요리도, 거의 모두 독학으로 경지에 오른 그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며 음식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자연 재료를 자기가 직접 먹어보고 테스트하는데, 자연 요리를 연구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며칠씩 자다 깨어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임지호는 지병도 없었고 너무나 건강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다들 충격을 받았습니다. 혹시 또 자연 재료를 직접 드시다가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치명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썩은 것도 먹고 그걸 먹어봐야 아무리 썩은 걸 먹어도 탈 나지를 않습니다.” “새로운 약초에 대해서는 항상 테스팅을 조금씩 해 봅니다.” 임지호 님이 살아계셨다면 더 많은 일을 해내셨을 것 같은데 갑자기 일찍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김혜수, 故 임지호를 위해..
배우 김혜수는 요리연구가 고(故) 임지호의 기일을 추모했습니다. 6월 12일 소셜미디어에 “그리운 선생님”이라는 문구와 함께 임지호와 찍었던 사진을 게재했는데요. 사진에는 김혜수와 임지호가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촬영현장을 둘러보며 걸어가고 있는가 하면 무언가를 주어 담으며 집중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지난해에도 김혜수는 “많이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이라는 글을 올리며 애도했습니다. 김혜수는 과거 SBS TV 교양 프로그램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에 출연하며 고인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이후 김혜수는 자연을 재료 삼아 요리하는 ‘방랑식객’ 임지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밥정’의 내래이션을 맡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