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영원한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씨는 한 때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다며 후원금을 받은 뒤 이를 모두 본인의 부를 쌓는 데에 사용했다는 누명을 쓴 적도 있던 이상용 씨. 그가 최근 전해온 근황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과연 횡령 루머 이후 이상용 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대체 그에게 누명을 씌운 이의 충격적인 정체는 무엇일까요? 나아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상용 씨를 전국 노래자랑 송해 씨의 후임자로 꼽았지만, 그가 바톤을 이어받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이유까지 이번 영상을 통해 청정구역과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국민영웅 ‘뽀빠이‘
최근 김신영 씨와 전국 노래자랑에 대한 시청률 하락 기사가 올라왔을 당시 많은 분들이 “왜 이상용 씨가 진행자로 뽑히지 않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는 의견을 내비추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는 이미 mbc 우정의 무대를 통해 진행자로서의 엄청난 능력을 인정받았던 적이 있는 인물이죠. 그가 진행했던 우정의 무대는 “뒤에 계신 분은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고향 앞으로” 등 다양한 유행어를 남긴 전설의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상용 씨. 그 덕분에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거의 국민 mc급으로 사랑을 받던 진행자였죠.
하지만 그가 많은 이들의 애정을 독차지했던 데에는 단순히 진행 능력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본인은 4천500만 원짜리 집에 살고, 30년이나 된 고물차를 몰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학생의 수술비를 흔쾌히 지원해 주었던 일화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이상용 씨는 직접 사단법인 한국 어린이 보호회를 설립하여 심장병을 앓는 아동들의 수술비를 모금하고, 이를 통해 16년 동안 무려 567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찾아주는 등 엄청난 선행을 베풀어 왔던 것으로 유명하죠. 이러한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대중들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 자리가 공석이 되자, 자연스럽게 고 송해 씨의 후임으로 이상용 씨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결국 고 송해 씨의 후임자가 되지 못했죠. 그렇다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유력 후임자였던 이상용 씨는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의 바톤을 이어받지 못한 걸까요?
한순간 몰락한 국민 영웅
이상용 씨가 전국 노래자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잘 나가던 우정의 무대에서 왜 하차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1989년부터 1997년까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우정의 무대.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갑작스럽게 불거진 이상용 씨의 횡령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 이상용 씨는 한국 어린이 보호회를 운영하며, 동시에 방송 활동까지 진행 중이었는데요. 1996년어느 날 이상용 씨는 그간 심장병 어린이 기금을 횡령해왔다는 누명을 쓰고 갑자기 취조를 당해야 했죠. 심지어 kbs 추적 60분에서는 이상용 씨가 책, 출판 등을 통해 40억 원을 모금한 뒤, 그 중 단 2천여만 원 가량만 치료금으로 기부하고, 나머지 금액은 전부 본인의 부를 축척하는 데 사용하였다는 내용의 방송을 별다른 확인 절차도 없이 송출하기까지 했는데요.
이로 인해 이상용 씨는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고, 우정의 무대 또한 진행자가 교체되었다가 곧 폐지되는 안타까운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상용 씨는 재산을 부정하게 취득하기는 커녕, 오히려 버는 족족 어린이들의 수술비에 보태느라 통장 잔액이 40만 원에 불과했다고 하죠.
결국 이상용 씨는 첫 보도 이후 3개월 가량이 지난 1997년 2월, 곧바로 혐의점 없음으로 인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미 상황은 그의 명예가 나락 끝까지 떨어진 뒤였죠. 그의 방송 생명이 끝나버린 것은 물론, 이상용 씨의 부친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접 전단지를 돌리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말입니다.
사건의 진실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한순간에 국민 영웅에서 천하의 나쁜 놈이 되어버린 이상용 씨. 그렇다면 대체 누가, 또 어떤 이유로 그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요? 알고 보니 당시 그를 공격했던 이는 청와대 관계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상용 씨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1996년 당시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대전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상용 씨가 그 제안을 거절하자, 해당 인물이 자신의 권력을 악용하여 저질스러운 루머를 퍼뜨렸던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이상용 씨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던 이들은 루머의 출발점이었던 청와대 관계자도, 확인조차 되지 않은 사실을 뻔뻔하게 보도한 언론인도 아니었는데요. 오히려 그동안 도와주었던 이들 중 단 한 명 조차 “내가 이상용 씨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라며 증언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돈으로 인당 18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총 567명의 어린이를 구해준 이상용 씨.그러나 정작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그때의 어린이들은 그 누구 하나 이상용 씨를 위해 나서거나 먼저 연락을 취하지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용 씨 스스로는 “아마 그 아이들도 어른이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나니, 과거 자신이 가난해서 수술비까지도 지원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진 모양이다” 라며 그들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쩜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이렇게까지 모른 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근황
아무튼 이토록 힘겨웠던 세월을 딛고 일어나 이제는 다시 방송계에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이상용 씨. 그렇다면 최근 그의 근황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제라도 방송을 통해 돈을 벌며 여유롭게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되는데요. 일평생 아픈 어린이를 돕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다는 이상용 씨.
여기에 고된 미국 생활과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남의 논과 밭일을 대신 해주며 보냈던 세월이 겹쳐, 현재 그는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라고 합니다. 전립선 질환과 다리 골절 등 여러 증상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워낙 당뇨가 심한 탓에 제대로 된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그는 여든이 가까운 나이까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 매일 외출을 할 때마다 빳빳한 1천 원짜리로 10만 원을 챙겨 나선다고 하는데요.
이쯤 되니 워낙 송해 씨와 가족과도 같은 사이였던 그가 전국 노래자랑의 바톤을 물려받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만약 그가 불명예스러운 루머에 휩싸여 우정의 무대를 하차하지 않았더라면 송해 씨 역시도 건강이 나빠지던 무렵 일찍이 이상용 씨에게 진행자 자리를 물려주고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지금 이상용 씨의 입장에서는 나이와 건강, 그리고 후배인 김신영 씨를 위하는 마음 때문에라도 전국 노래자랑의 진행자를 막기가 어려울 것 같아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선행을 베풀고 있는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 씨 부디 다시금 건강을 회복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