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 2024

“제발 단 1시간만 달리고 싶습니다..” 은메달 리스트 이봉주 여전히 안타까운 현재 상황, 6시간 수술까지 감행 했지만 결국..

대한민국 은메달 리스트

마라토너 이봉주가 근육이 비틀어지는 신경계 질환 근육긴장이상증(디스토니아)로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차도가 없다고 털어놨습니다.’근육긴장이상증’은 뇌신경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명령체계 문제로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이 스스로 움직이는 질환입니다.

이봉주는 “지금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잘 살고 잘 다니고 있다”면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가 자기 마음대로 뛴다.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잠도 잘 못 자서 초반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척추에 낭종이 하나 생겼는데 그게 원인이라고 수술을 권유하더라. 6시간 넘게 수술했는데 큰 변화가 없었다. 지금도 재활 열심히 하면서 이겨내고 있다.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봉주는

투병 와중에도 자신을 찾는 모든 대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평생을 달려왔고 늘 익숙했는데 하루아침에 달릴 수 없게 되니까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아프기 전까지는 매일 뛰었다. 건강이 회복되면 한시간이라도 달려보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이봉주는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 은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 우승 등 각종 세계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국민 영웅’으로 불린 마라토너다.

2009년 은퇴 이후 방송 활동에 집중하던 그는 2020년 1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원인 불명의 통증에 시달리다 근육긴장이상증 판정을 받았다. 2021년 6월 서울성모병원에서 6시간 30분에 걸쳐 흉추 6번과 7번 사이에 있는 ‘척수지주막 낭종’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2019년

JTBC ‘뭉쳐야 산다’의 어쩌다 FC멤버로 활동했던 이봉주는 갑작스런 허리 부상으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당시 이봉주는 허리가 심하게 굽고 압박 붕대나 배에 보톡스를 맞지 않고선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이후 ‘복병 이상운동증’이라고 병명을 밝혔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이러한 증상이 하루 이틀 정도, 짧게는 몇 분에서 몇 시간에 그치는 정도로 있었는데, 점점 증상이 심해지면서 허리가 굽고 경추, 흉추, 요추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휠체어와 지팡이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2021년 이봉주는 낭종 수술을 진행한 뒤 회복 중이라고 밝히며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공개된 사진에서 이봉주는 불과 2개월 전 모습과 다르게 허리를 꼿꼿이 편 상태로 재활을 위해 운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봉주는 “잘 이겨내서 여러분들께 뛰는 모습 꼭 보여드릴 것”이라고 포부를 전해 모두의 응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유튜브에 출연해 2년 만에 근황을 전한 이봉주는 수술 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여전히 난치병과 싸우는 중이었고,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그동안 모아 놓았던 재산까지 모두 없어져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아이가 지금 삼수하고 작은 아이는 재수 중”이라며 두 아들의 근황도 전했습니다. 그는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하다”며 “큰 아이는 바깥 활동을 안 한다”고 고백해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주위에서 굿하라는 얘기 많이 들었다”면서도 “돈이 아까워서 안 한 게 아니라 아내가 반대해서 할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생

올해 나이 52세인 이봉주는 손기정, 황영조에 이어 대한민국 마라톤의 계보를 이은 선수입니다. ‘국민 마라토너’ 칭호를 얻은 이봉주는 현역 시절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및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1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습니다.

어린시절 축구선수가 꿈이었으나 돈이 없어서 꿈을 접었고, 대신 돈이 거의 안 드는 마라톤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신체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이봉주는 매일 12km나 되는 학교까지의 거리를 버스비도 아끼고 훈련도 할 겸 뛰어다녔는데 이런 경험 때문에 과거의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어린 아이들을 도와주는 선행을 이어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