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 떠난 김자옥
오승근과 김자옥은 서로의 이혼 상처를 보듬으며 1984년에 재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2014년 11월 16일 김자옥이 눈을 감을 때까지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불렸는데요. 오승근은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김자옥을 극진히 보살폈죠.
그 덕분에 그녀의 병이 완치된 듯했지만 야속하게도 2012년 남은 암 세포가 폐로 전이됐고 김자옥은 항암 치료를 받으며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는데요.
결국 2014년 11월 14일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고 이틀 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을 고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슬픔 속에서 김자옥이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흘렀지만, 남편 오승근은 김자옥 사진 한 장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승근과의 재혼
그뒤 가수 오승근을 만나 두 사람은 한 번의 이혼 경험을 겪었지만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재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김자옥 오승근 결혼 과정은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그들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김자옥 집안과과 오승근 집안 양가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습니다. 김자옥이 엄청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사는 품격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한 번씩 결혼 실패를 했고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또 다시 이혼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누구도 두 사람의 결혼을 막지는 못했죠. 이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딸 오지현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재혼을 하기 전에도 김자옥과 오지현은 친하게 지냈는데 누가 내 엄마가 되면 좋겠냐 라는 질문에 오승근 딸이 김자옥을 꼽았다고 합니다.
어렵게 결혼 후 둘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해요. 오승근이 결혼한 이후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큰 위기가 닥치게 되었죠. 1990년대 여행사로 업종을 변경했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큰 부도를 맞게 된 것입니다. 오승근은 여행사를 통하여 무려 70억 원을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오승근은 빚을 갚지 못해서 신용불량자로 살아가게 되었죠.
하지만 오승근 아내 김자옥은 겉으로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오승근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주고 위로를 해주었다고 하는데요. 많은 부부들이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을 많이 하는데 김자옥은 끝까지 남편에게 힘이 돼 주고 가정을 지킨 멋진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오승근은 김자옥의 조언을 받아 다시 가수로 활동하게 되는데요. 트로트 가수로 인지도를 높이며 김자옥과 함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김자옥 오승근 부부를 보면서 이런 부부가 진정한 부부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서로를 신뢰하며 힘든 일도 함께 극복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메모
하지만 2014년 그녀의 별세로 이 둘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최근에서야 김자욱 집 안에서 쓴 메모와 말들이 공개돼 큰 충격을 전하고 있는데요.
먼저 김자옥의 4살 터울의 친언니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 끊었는데요. 그녀보고 죽기 전 “나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동생 김태욱은 “편안하게 이 밤 보내시고 안치환에 오늘이 좋다. 들으면서 김태우의 기분 좋은 밤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다 잘 될 겁니다” 라는 글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김자옥 그녀 역시 자신의 앞날을 예감이라도 한 듯 병원으로 가면서 혼자 남겨질 남편이 걱정되어 메모를 한 장 남겼는데요. “사랑해요. 수고 많았어요.” 라는 글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메모가 사랑했던 분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던 고인들의 마지막 말이 아니었을까요.
매일 야산을 오르는 이유가..
아내를 떠나보낸 지 벌써 9년이 흘렀지만, 오승근은 그녀를 생각하며 연고도 없는 청주에 보금자리를 꾸렸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끝까지 연기를 놓지 않았던 김자옥이 많은 이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그녀를 위한 추모관을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요.
오승근은 “이 자리에 아내 추모관을 만들려고 계획을 세웠다”라며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배우 故 김자옥을 언급했다. 그는 “전망이 좋다. 나는 앞이 확 트인 곳을 좋아해서 내려왔다. 그러다가 쭉 살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집으로 이동한 오승근은 “저기 보이지? 저기 맨 꼭대기에 보이는 곳”이라며 창 너머로 보이는 고 김자옥을 위한 추모관 후보지를 가리켜 애틋함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