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효림이
시어머니이자 배우 고(故) 김수 미의 발인식에서 눈물을 쏟았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 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수미의 발인식이 엄수 됐다. 상주로는 아들이자 나팔꽃 F&B 대표인 정명호를 비롯해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 딸 정 주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날 서효림은 운구 행렬이 이어지자 손수건으 로 입을 틀어막으며 오열했다. 그는 “엄마 가지 마”라고 흐느끼며 울었고,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눈시울을 붉혔다. 서효림은 지난 2019년 김 수미의 아들 정명호와 결혼했다.
앞서 김수미는 지난 25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고인은 이날 오전 8시 8분께 심정지 상태로 구 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 망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혈당 쇼크에 따른 심 정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정명호는 공식입장을 통해 “나의 어머 니이시면서, 오랜 시간 국민 여러분들께 큰 사 랑을 받아온 배우 김수미님께서 오늘 오전 7시 30분 고혈당쇼크로 세상을 떠나셨다. 전원일기 의 ‘일용 엄니’에서 연극 ‘친정 엄마’까지, 평생 을 모두의 어머니로 웃고 울며 살아오신 김수 미 배우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언제나 연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 로 시청자 곁에 머물렀던 김수미를 기억해주시 기 바라며, 나와 가족들도 오랜 세월 보내주신 성원과 사랑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애도해주시는 여러분 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김수미는 1949년생으로 지난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MBC ‘전원일기’에서 ‘ 일용 엄니’ 역을 맡으며 국민 배우로 큰 사랑을 받은 김수미는 지난 4월 6일 개막한 뮤지컬 ‘친 정엄마’의 주인공 봉란 역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또한 최근까지 tvN STORY 예능 ‘회장님네 사 람들’, KBS 2TV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한편, 김수미의
평소 며느리를 향한 애정은 전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김수미 씨에게는 많지 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여의였던 슬픈 경험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았을 김수미 씨. 그런데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사건이 하나 더 벌어집니다. 원흉은 김수미 씨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사귀었다는 전 남자친구. 그와 결혼을 약속한 김수미 씨는 그의 집에 찾아가 예비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수미 씨는 “조실부모했다”, “대학을 안 나왔다” 그리고 “직업이 딴따라다”라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으며 결혼을 거절당했다고 하죠.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남자를 만나는 것에 거부감을 갖게 된 그녀 현 남편이 아무리 호감을 드러내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하루는 아들의 짝사랑을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집으로 그녀를 불렀다고 하죠. 내키지는 않았지만 예의상 방문한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김수미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일찍 부모님을 여이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라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김수미 씨는 결혼 후에도 남편보다 시어머니를 믿고 의지하며 생활해 왔다고 알려져 있죠. 또한 자녀를 갖기도 전부터 ‘나도 며느리를 보게 된다면 꼭 우리 시어머니처럼 대해주겠다’라는 결심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부 갈등 걱정 없이 결혼 생활을 해왔다는 김수미 씨지만 뜻밖의 부분에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어야 했죠. 문제의 원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 그는 수차례 불륜을 저지르고 사업을 하겠다며 재산을 탕진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죠. 심지어 한 방송에서는 “내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지만 우리 시어머니가 수미야 내 아들이지만 싹수가 노랗다. 차라리 이혼을 해라라며 사과를 하신 적이 있다” 라고 그간의 사연을 털어놓은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신혼 초반부터 김수미 씨의 시어머니는 늘 자신의 아들로 인해 속을 끓이는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결국 김수미 씨가 둘째 아들을 낳기 직전. 상황을 보다 못한 시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내 아들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살아라”라며 신사동에 있던 건물의 명의까지 이전해 주었다고 하죠.
김수미 씨는 당시 남편의 방황에 고통을 겪고 있기는 했지만 꼭 친어머니처럼 자신을 대해주는 시모를 떠날 수 없어 이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금은 그녀의 남편도 성격을 많이 고친 뒤 평안한 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