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 2025

“전날 강연까지 하던 사람인데 왜..?”뽀빠이 이상용, 건강했는데 하루 아침에 별세한 충격적인 이유가…

전날까지 강연했던 ‘국민 MC’ 이상용,

‘뽀빠이’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방송인 이상용이 5월 9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특히 전날까지도 강연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 소식은 팬들과 연예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날 오전, 감기 증세로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그는 갑작스럽게 쓰러져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눈을 감았다.

이상용은 생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도 다리 골절에도 “안 아프다”며 밝은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다. 그의 마지막까지 이어졌던 긍정적인 태도와 강연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남겼다. 누리꾼들은 “믿기지 않는다”, “추억의 인물이 떠나서 너무 슬프다”, “하늘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시길”이라며 애도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나 병원 내 빈 호실 문제로 인해 아들이 홍콩에서 귀국한 후인 10일 오후부터 차려질 계획이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그의 삶과 인생에 대해 다시금 조명하게 만들고 있다.

세상이 잊지 않을 ‘진짜 어른’

이상용은 단순한 방송인을 넘어, 따뜻한 선행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인물이다. 그는 생전 자신이 어렵던 시절에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다. 한 아이의 파란 입술과 손톱을 보고 부모가 수술비가 없어 치료를 못한다고 하자, 당시 15만 원짜리 셋방에 살던 그는 1,800만 원을 책임지고 수술을 결정했다.

이후 6개월 치 선불을 받고 밤마다 술집에서 사회를 보며 마련한 돈으로 아이를 수술시켰고, 그렇게 시작된 선행이 전국으로 퍼지며 무려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에게 희망을 전달했다. 그는 “우리 애도 살려달라”는 부모들의 요청에 “하자!”고 대답하며, 돈보다 생명을 우선시했던 진짜 어른이었다.

하지만 그의 따뜻한 행보는 억울한 누명으로 얼룩졌다.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그는 3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방송은 모두 끊겼고, 그는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로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절친 김홍신 작가는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됐다”며 그의 품격과 진심을 회상했다.

끝까지 밝고 따뜻했던 ‘뽀빠이’

이상용은 1971년 CBS 기독교방송 MC로 데뷔한 뒤, 1975년 KBS <모이자 노래하자>에서 ‘뽀빠이’라는 별명으로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존재가 됐다. 이후 MBC <우정의 무대>에서 군 장병과 가족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모습으로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방송인이 됐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도 방송에서 자주 언급했다. <모이자 노래하자> 녹화 도중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도 끝까지 웃으며 녹화를 마친 후,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길을 달려 대전까지 갔던 일화는 그가 얼마나 책임감 있는 사람인지 보여준다. 그는 “다른 사람을 욕하지 않고, 용서하고, 좋은 일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며, 그 철학대로 평생을 살았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도 세상이 기억해야 할 그의 삶은 분명하다. 방송인으로서, 사회운동가로서, 한 사람의 따뜻한 이웃으로서 이상용은 우리에게 참된 ‘어른’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줬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뽀빠이’ 이상용은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그리고 그가 남긴 선한 영향력과 겸손한 삶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