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선행을..

국민 MC ‘뽀빠이’ 이상용이 5월 9일 오후 2시 30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팬들과 연예계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상용은 그날 오전까지도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한 상태로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온 직후 쓰러졌으며, 곧바로 인근 병원인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사인은 심정지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 건, 그가 별세 하루 전까지도 강연을 이어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던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많은 이들에게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빈소는 홍콩에 거주 중인 아들이 10일 귀국한 뒤,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기 위한 추모의 발걸음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매달 300만 원, 50년 넘게..

이상용은 생전 50년 넘게 한 달에 300만 원씩 인출해 1000원짜리 신권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선행을 실천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2022년 MBN <특종세상>, 2023년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을 통해 공개되며 큰 감동을 준 바 있습니다. 그는 “신권은 복돈이다. 1000원이지만 이 돈을 받는 사람이 그날 하루만큼은 기분 좋게 일할 수 있길 바란다”며 “수레 끄는 어르신에게는 20장, 식당 이모에겐 5장, 아기에겐 2장을 준다. 하루에 100장, 한 달에 300만 원이 나간다”고 밝혔습니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상대방의 하루를 응원하고 응원받는 사람의 기쁨을 생각하며 건넨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전봇대 수리공도 보이면 달려가 돈을 준다. 식당 주인은 안 주지만 주방 이모는 준다”며 소외된 사람, 힘든 사람에게 눈길을 먼저 보내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줬습니다. “돈이 아니라 복이다. 이 복이 사람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단순한 시혜가 아닌 진심 어린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55년간 이어진 이 작은 습관은 고인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억울한 누명과 미국 생활…
이상용은 1973년 MBC <유쾌한 청백전>으로 데뷔한 뒤, KBS <모이자 노래하자>와 MBC <우정의 무대> 등에서 활약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방송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친구, 군인들의 형, 그리고 노년층의 동반자 역할을 하며 전 세대에 웃음과 위로를 전해온 그는, 사회의 약자를 대변하고 진심으로 품어낸 진짜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500명이 넘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후원하며 감동을 안긴 그는, 2000년대 초반 후원금 유용 의혹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방송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1년 뒤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방송 출연은 끊겼고, 언론도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무죄였지만 기사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게 더 서글펐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로 14시간씩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절친 김홍신 작가는 “그 모든 고난을 말없이 견뎌낸 진짜 사람”이라며 그를 회상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 소식을 녹화 도중 접하고도 웃으며 방송을 마친 뒤 울면서 대전까지 달려갔던 이상용.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한 삶보다, 남을 위한 삶을 택했던 어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