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 2024

“아내와 7년간 말도 섞지 않았어요…”최근 밝혀진 ‘뽀식이’ 이용식의 안타까운 가족사, 아내와 한마디도 안했던 진짜 이유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오늘날의 가족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비로소 가족이 이런 환상에 들어맞는 경우가 많고 또한 경제적 이유 말고도 가족 내에는 다양한 이유와 가족사로 인해 때로는 가족의 환상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출처 : 일간스포츠

최근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미스터 트롯2>에서는 한 참가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고 그리고 이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은데 아버님께서 허락을 안 해주신다”며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고백하며 “사위로서 확실한 능력이 있었다면 결혼하는 게 좀 더 쉬웠을텐데 여자친구와 2년 넘게 교제했음에도 아버님과는 3초밖에 못 봤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었는데 이 아버님은 바로 코미디언 이용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주인공 이용식은 앞서 얘기한 대로 가장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마지막 보루가 가족이라고 믿는 사람으로 언젠가는 사위의 진심을 알아주고 마음의 문이 열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랬던 그도 과거 자식을 버리고 간 아버지로 인해 부모님이 10년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자 정말 신기하게도 본인도 아내와 무려 7년간 대화를 하지 않고 인생의 큰 고비가 찾아오면서 현재 한쪽 눈이 실명되어 시야가 까맣게 되고 말았다고
고백한 이용식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어머니

1949년 이북에서 살던 이용식의 어린시절 아버지가 가족들에게는 말도 안 하고 혼자 월남을 해버리자 어린 세 아들과 어머니가 북에 남겨져 당시 북한군으로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힘든 일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출처 : 뉴스앤

그러다 한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던 상황이 돼서야 아버지가 가족들을 찾기 위해 다시 북으로 왔고 이후 남한으로 다 같이 내갔을 때 막내 아들 이용식이 태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가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 탈출한 아버지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단 한 마디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용식의 어머니는 사 형제를 위해서 새벽 4시부터 길가에 앉아 생선을 팔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하루는 새벽 기도로 교회를 갔다 오면서 성경책이 든 가방을 가지고 계단에 잠시 앉아 있는다는 게 그대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개그맨 그리고 뽀식이와 만남

이용식은 어려서부터 입담이 좋아 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하루는 바로 위 형의 절친한 친구인 한 연예인의 추천으로 연예계의 길을 권유받게 됩니다.

출처 : mbc

그 연예인은 바로 전원일기의 ‘일용이’ 역을 맡은 박은수로 당시 그의 추천으로 인해 이용식은 개그맨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개그맨 공채는 mbc가 우리나라 최초였고 1400명 정도가 공채 개그맨 시험 지원자중 11명 안에 속하게 되어 이용식은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공채 개그맨 생활을 딱 1년만 하고 곧바로 군대에 들어가야 했지만 운좋게 ‘문선대’라는 곳에 배치가 되어 이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가며 36개월간 군대 안팎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오히려 실력을 키운 채로 전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mbc

이용식은 전역 후 다시 mbc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한 pd가 김병조, 왕영은, 이용식을 불러 <뽀뽀뽀>라는 최초의 어린이 전문 프로가 생겼다며 잘해달라고 당부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뽀병이 ,뽀미 언니, 뽀식이 입니다.

이후 그는 뽀식이로 무려 19년 동안 이 프로에 출연하며 아이들의 대통령이 되어 큰 인기를 누렸고, 그리고 <뽀뽀뽀>뿐만 아니라 그가 80년대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며 화제의 프로그램엔 언제나 이용식이라는 새 글자가 따라다니게 됩니다.

결혼과 시련

뽀식이로 활약을 하던 때 이용식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에 골인을 했지만 두 사람은 아이가 안 생겨서 점점 대화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출처 : mbc

이 때 이용식은 과거 본인의 부모님들이 대화를 안 했던 것과 똑같이 무려 7년 동안 서로가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하죠. 그래서 오로지 아이가 생기길 바라며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노력했으나 그게 잘 안 되자 당시 집 안 분위기가 안좋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뽀식이로 활동하며 카메라 앞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마음이 심란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아이를 갖기 위해 전국의 병원을 찾아 다녔고, 교회에 새벽 기도는 물론 유명 사찰까지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어렵게 얻은 딸 그리고 건강이상

이렇게 오랜 노력 끝에 이용식 부부는 무려 8년이라는 인고의 시간 끝에 마침내 딸 수민이를 나이 마흔이 다 돼서야 기적처럼 가지게 됩니다.

출처 : 이수민 인스타그램

그렇게 아이의 탄생은 위기를 맞았던 부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 주게 되는데 이때를 두고 “이 세상에서 제일 생각하기 싫은 것이 ‘만약에 이때 딸이 안 태어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며 딸 때문에 웃고 힘이 나고 딸 때문에 용기가 나서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지내던 이용식은 1997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 단 보름 만에 똑같이 그에게도 심근경색이 오면서 인생의 가장 큰 고비가 찾아오게 됩니다.

출처 : sbs

이때 이용식은 아버지의 사인이 심근경색이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 병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고 얼마지나지 않아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아 병원을 찾아갔고 이 덕에 더 늦지 않고 심근 경색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용식은 수술을 받기전에 본인의 딸이 결혼 할 때 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기도 덕분인지 다행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명의 고백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도 이용식은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며 많은 사랑을 받긴 했으나 다시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수십 년간 90kg 안팎이던 몸무게가 100kg를 훌쩍 넘어가면서부터는 생명의 고비를 무려 두 번이나 더 겪어야만 했습니다.

출처 : mbn

특히 현재 그는 한쪽 눈이 물체는 안 보이고 빛만 보이는 실명 상태인데 이는 방송 활동을 무리하게 하며 과로하게 되고 체중 관리까지 실패하며 망막이 터지면서 눈의 한쪽 시야가 까맣게 되고 말았는데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렇겠지 내일은 잠을 푹 자고 나면 괜찮겠지’ 했었는데 결국 이날 이후부터 한쪽 눈은 빛만 들어오고 물체는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뉴스앤

이후 눈이 안 보이는 것을 들키면 방송을 할 수 없어 쭉 숨기고 지내다가 하루는 건강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눈을 검사한다고 스튜디오에 기계를 가지고 오는 바람에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처럼 골든 타임을 놓치는 분들이 바로 병원에 가서 이러한 문제가 있는 것을 빨리 차단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결국 실명을 공개하게 되었다고 하죠.

이용식이 꼭 전하려는 말

마지막으로 이용식 그가 고백하길 “인생의 후반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내 건강 그리고 가족의 건강이다. 그리고 건강과 관련해서 가장 무서운 게 뭐냐면 바로 자가 진단이다. 자기 스스로가 의학적인 상식이 없으면서 피곤해서 그렇다 지금 내가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제일 위험한 생각이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두 번째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다. 사실 내가 굉장히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많으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더라 대신 긴장할 땐 긴장은 해야 된다. 긴장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다. 방송을 오래 했다고 해서 대본을 대충 보고 방송 녹화를 하면 결국 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마음이 편안해야 된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코미디언으로서는 ‘최고다’라는 말보다 ‘열심히 했다’ 그리고 ‘열심히 참 오래 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고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후배들에게는 자꾸 가르치려 들면 안 되고 선배로 사는 것보다 어른으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아무쪼록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지금도 나를 보는 분들 중에서 스스럼 없이 배를 만지고 심지어 수산시장에 가면 ‘아이고 tv로 보는 것보다 생물이 낫네’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생선도 아닌데 실물이 아닌 생물이라니 그런데 그런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어느 날까지 이용식이 올 수 있었다. 끝까지 교만하지 않고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