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 2024

“박연진의 복수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 글로리 결말에서 박연진에 대한 복수가 유난히 약해 보였던 놀라운 이유

수미상관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가 본인이 봐도 잘 썼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대본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박연진은 고등학생 시절 여왕처럼 군림하다가 이후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이러한 두 모습이 대비되어 더 처참하게 느껴지죠.

김은숙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많은 대사를 수미상관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보고 싶어 죽는 줄” 이라며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말을 내뱉는 박연진. 하지만 박연진은 당당하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지금은 범죄자 신분으로 전락한 상태인데요.

이제 푸석한 머리에 파래진 입술로 모든 걸 잃은 모습입니다. 동은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죠. 일방적으로 고통받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이제 더 이상 동은은 연진에게 겁먹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대응합니다.

둘이서

연지는 학창 시절 동은을 발밑에 두고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면서 괴롭혔는데요. 현재의 연진은 모든 걸 다 잃은 채 울먹이는 표정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연진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채연의 ‘둘이서’라는 곡으로서 2004년 12월 13일에 출시되었는데요. 이 날짜는 박연진이 고등학생 시절 윤소희를 살해한 날짜와 비슷합니다. 남을 괴롭힐 때 불렀던 신나는 노래를 이젠 정신이 나간 채 흥얼거리는 모습은 언뜻 기괴한 느낌이 들면서도 동은의 복수가 얼마나 통쾌한지 느껴지네요.

참고로 드라마에는 윤소희가 어떻게 괴롭힘 당했는지 구체적인 장면으로 나오진 않습니다. 편지를 자세히 보면 ‘박연진 무리는 윤소희를 괴롭힐 때에도 고데기나 담배 등을 사용해서 몸을 지졌기에 소희는 라이터를 비롯해 가스렌지 불도 켜지 못했다’고 써있죠.

살인 사건 경위도 자세히 적혀 있는데 ‘혜정이 학원으로 소희를 불러냈고 연진이 옥상에서 소희를 밀어 죽였습니다. 이 사람은 소희의 시체를 발견했지만 신고하지 않은 방관자였으며 전재준은 연진과 함께 있었다며 거짓 알리바이를 댔죠.

연진에 대한 복수가 약해 보이는 이유

“너의 세상이 온통 나였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동은. 동은은 괴롭힘을 당했던 19살부터 시간이 멈췄고 이후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 연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동은은 반대로 복수를 하여 연진의 세상을 동은으로 가득 채울 계획을 세우는데요. 이후 복수가 끝나고 연진은 감옥에 가지만 눈에 띄는 신체적 고통이 없었고 여전히 동은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입니다.

누가 봐도 연진의 세상은 아직 동은으로 채워지지 않은 모습이죠. 형벌을 받는 것은 동은과 상관없이 그냥 자신이 지은 대가를 치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인데요. 뭔가 다른 가해자들의 최후에 비해 연진의 처벌이 약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김은숙 작가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추가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선사하는 걸로 복수를 완성시킵니다.

연진에게 분명 억울한 것이 있을 거라고 궁금하게 만들고 손명오는 연진이 죽인 게 아니라 사실 경란이 마지막에 처리한 것이라는 진실을 끝내 숨기죠. 이는 연진이 손명오 살인죄에 대해서는 누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억울한 게 뭔지도 모른 채 감옥에 갇혀 연진의 평생이 동은이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허술한 연진

연진은 악독하고 치밀한 듯 보이지만 사실 뒤처리를 할 때 상당히 미숙한데요. 윤소희를 죽였을 때 당황한 나머지 라이터와 명찰를 현장에 두고 떠났죠.

두 가지 단서는 핵심 증거가 될 뻔했지만 연진의 엄마와 신영준이 뒤처리해 줍니다. 명오를 죽였을 때 범행 무기였던 위스키 병이나 살인 현장을 그대로 두고 떠난 후 어쩔 줄 몰랐는데요. 큰 사고를 쳐도 누군가 해결해 주겠지 하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손명오의 시체 보관실에서도 연진은 끝까지 본인 멋대로 행동하다가 흰 가방의 장식 고리를 떨어뜨리는데 이런 허술한 모습들 때문에 결국 덜미를 붙잡히게 되죠. 연진과 연진의 엄마가 교도소에서 마주쳤을 때 연진이 엄마를 애타게 부른 이유는 엄마가 반갑거나 걱정돼서가 아니라 본인이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엄마밖에 남지 않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엄마도 자식 때문에 모든 걸 잃게 되었으니 결국 자식을 외면하는 선택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