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병상 곁을 지킨 제자

이경실은 9월 26일 새벽 SNS에 故 전유성과의 마지막 만남을 전하며, 무엇보다 ‘김신영’의 헌신을 핵심으로 꺼냈다. 수요일 녹화를 마친 뒤 폭우 속에서도 “지금이 아니면 늦겠다”는 마음 하나로 서울을 떠나 오후 2시에 출발, 전북대병원에 5시 30분께 도착했을 때, 병상 곁에는 이미 김신영이 있었다. 물수건을 갈아가며 열을 식혀 드리고, 산소호흡기를 낀 스승의 호흡을 살피는 모습이 단 한순간도 자리를 뜨지 않는 ‘지킴이’ 그 자체였다고 했다. 이경실은 “오빠의 교수님이셨던 분”이라 부르며, 무대 밖에서 더 치열하게 스승을 돌보는 김신영의 태도가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상의를 적신 물수건으로 식히는 소소한 간호까지 직접 해내는 손길—그 곁에서 이경실은 농담 반 위로 반으로 “우리 오빠, 섹시하게 누워계시네?”라고 말을 건넸고, 전유성은 “너희들 보라고 이러고 있지”라며 특유의 유머로 받아주었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선후배가 뒤섞인 그 병실은 잠깐이지만 삶 전체를 응축한 무대였다. 그 순간을 지탱한 축은 다름 아닌 김신영의 조용한 헌신이었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선후배의 인사

이경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짧았지만 깊었던 마지막 대화는 김신영의 ‘돌봄’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열을 식히고 체위를 바꾸며 호흡을 도우니, 전유성이 숨을 고르고 말을 건넸다. “경실아, 와줘서 고맙고 난 너희들이 늘 자랑스럽다. 건강해라.” 선배의 말에 이경실은 “우리가 오빠 덕분에 든든했어요. 먼저 전화로 챙겨주는 오빠가 늘 고마웠어요”라고 답했고, 전유성은 “아냐, 내가 더 고마워”라고 애써 말을 보탰다. 숨이 가쁜 스승이 한 마디라도 더 전하려 애쓰는 동안, 김신영은 여전히 물수건을 바꾸고 호흡을 살피며 말 없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 ‘조율’이 있었기에 마지막 인사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경실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감추려 전유성의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 드리며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병실의 공기는 무겁지 않았다. 유머로 시작해 감사로 이어지고, 제자가 만든 고요 속에서 선후배가 마음을 전하는—그야말로 전유성식 코미디의 마침표 같은 순간이었다. 마지막 대화의 배경에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 김신영의 땀과 숨이 겹겹이 깔려 있었다.
전유성 영면과 ‘개그의 스승’이 남긴 것
밤 9시 5분, 전유성이 영면에 들었다는 문자를 받은 뒤 이경실은 “오빠, 수고하셨어요. 멋지고 장하셨어요. 이제 아프지 말고 편안히 쉬세요”라고 썼다. 폐기흉으로 입원해 투병 끝에 떠난 개그계의 거목—장례는 희극인장으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그러나 이 비보 속에서도 사람들은 김신영을 떠올렸다. 스승의 ‘교수님’으로 불리며 마지막까지 물수건을 갈고, 곁을 지키며, 선후배의 인사를 잇는 다리가 되어 준 제자. 전유성이 평생 강조하던 ‘웃음의 구조’와 ‘사람의 온기’는 그날 병실에서 실물처럼 구현됐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고, 온도를 낮추며, 숨을 가다듬게 하고, 유머로 긴장을 풀어 주는 일—코미디가 본디 가진 생의 기술이다. 김신영은 그 기술을 무대가 아닌 병상에서 끝까지 수행했다. 이경실의 마지막 인사와 동료들의 애도, 그리고 조용히 흐른 간호의 시간까지 모두 합쳐 전유성의 퇴장은 ‘개그의 품위’로 완성됐다. 남은 우리에게 과제는 분명하다. 스승이 뿌린 씨앗을 각자의 자리에서 싹 틔우는 일, 그리고 김신영이 보여 준 태도로 서로의 마지막 장면을 따뜻하게 지켜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