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용필 씨를 두고 우리는 가왕이라고 일컫습니다. 그의 가창력은 가히 최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가창력은 순전히 피를 토하는 듯한 노력으로 완성된 것이죠. 가수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조용필 씨.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흑인도 감동한 목소리
조용필 씨는 부자 집안의 7남매 중 6 번째로 태어 났는데요. 그는 일찍이 음악을 좋아했고 기타를 즐겨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는 음악하는 것을 천시하던 때라 아버지가 극심하게 반대를 했고, 급기야 아버지에게 반항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그의 아버지는 음악하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었죠.
그러자 그는 고등학생 때 가출하게 되고 이후 거지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밤무대를 떠돌면서도 열심히 기타를 연마했습니다. 입소문이 나자 1968년 미군 무대에서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그의 노래를 들은 한 흑인이 그에게 가수가 되기를 권하기도 했다고 하죠.
벼락스타
그렇게 그는 밥 먹는 시간마저 아끼면서 음악을 공부했어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독학으로 끊임 없이 공부를 하다가 1971년에는 3인조 록 그룹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부터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한 콘테스트에 참가해 가수왕 상까지 받았죠. 그러다 1976년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벼락 스타가 되는데요 이 노래로 트롯 가수로 이름을 알기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후 갑자기 활동 금지를 당해 음악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이 시련을 자신을 갈고 닦는 수련의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그 시간동안 그는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자신의 창법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데요. 이때 그의 전성기 목소리와 창법이 만들진 것이죠. 그러다 시간이 흐른 후 활동 금지가 풀렸고 이후 나온 노래가 1980년 조용필 씨가 작곡한 ‘창밖의 여자’, ‘사랑은 아름답다’로 이 앨범은 우리나라 최초로 100만 장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탄생
당시 조용필 씨로 인해 오빠 부대가 만들어지며 우리나라 최초로 조직적인 팬 문화가 형성되며 말그대로 80년대는 조용필 씨의 시대가 되었었는데요.
그러다 92년부터는 갑자기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방송 출연을 극도로 자제합니다. 그 이후 콘서트로 본인의 주 무대를 옮겼는데요. 그리고 당시 열악한 콘서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해외 인류 공연들을 전부 공부하며 분석했고, 무대 총 감독까지 직접 하며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며 무대에 30억을 쓰기까지 했다고 하죠.
또한 1979년부터 결성된 ‘위대한 탄생’이라는 조용필 씨의 백업 밴드는 각 분야 최고의 멤버들이며 최고의 악기와 장비 그리고 대우를 해주어 그의 음악은 노래만 좋은 게 아니라 사운드가 엄청나다고 젊은 층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은 ‘실패작’
이렇게 모든걸 이룬 그였지만 그는 자기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는 언론의 힘이 엄청났었는데 음악이라는 세상에서는 거칠 것이 없었지만 그는 언론을 굉장히 두려워했다고 하죠.
그런 두려움이 결국 사랑하는 여자마저 잃게 만들었는데요. 탑스타가 된 그는 1981년 박지숙 씨와의 약혼 사실을 공개했는데 약혼 기간 중 배우 이미숙 씨와 염문설이 나게 됩니다. 그렇게 결혼을 미루다가 갑자기 1984년 극비리에 절에서 기자 7명만 초대해서 깜짝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죠. 하지만 결혼 기간 동안 그는 오로지 음악 활동에만 전념을 해서 와이프를 외롭게 했고 결국 4년 만에 합의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1992년 한 방송 쇼에 조용필 씨는 개그우먼 이성미 씨와 함께 출연을 했었는데요. 당시 이성미 씨가 “조용필 씨는 외로움 때문에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하며 자신도 모르게 실수로 조용필 씨의 진짜 속마음을 폭로하고 말았습니다. “조용필 씨가 술을 마시면 자신의 인생은 실패다. 너는 애라도 있지 않냐”라고 했다는 것이죠.
두 번째 이별의 아픔
평소 조용필 씨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1994년 45살에 자기보다 한 살 더 많은 안진현 씨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조용필 씨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엄마 같은 여성이었다고 하는데요. 성격 차이로 힘들어하던 전 부인과 달리 안진현 씨와는 아주 사이 좋게 잘 지냈고, 안진연 씨는 그가 음악 작업을 할 경우 그의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않으며 그가 마음껏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해요.
사실 그녀 또한 음악을 공부한 적이 있어 음악하는 사람들의 스타일을 이해해 준 것이고 특히 음악에 완전히 미쳐 있는 조용필 씨에게 더더욱 좋은 배우자였던 것이죠.
음악의 장인
안진현 씨가 세상을 떠나자 무려 10년간 신곡을 내지 않다가 마침내 내놓은 노래가 2013년 19집 앨범의 ‘바운스’였죠. 바운스는 나오자마자 젊은 아이돌 가수를 제치고 1등을 했고 당시 초등학생들도 따라 불렀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어요.
그때 그의 나이 60대.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조용필 씨는 지금도 현재 나오는 국내 아이돌 음악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항상 듣고 분석하기 때문. 상처를 딛고 다시 음악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음악의 장인이 되어 나타난 것이죠.
최근 근황으로는 또 정말 오랜만인 9년 만에 신곡을 선보였는데요. 70대가 되어서도 음악의 트렌디함을 잃지 않고 젊고 단단한 나이 들지 않는 목소리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